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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팔경에 「마지막 가을」이 깊어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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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단양팔경중 「사경」이 물에 잠긴다. 충주 다목적댐의 건설로 단양의 4대 비경이 전설속에 묻히는 것이다. 남한강 푸른 수면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의연히 솟은 도담삼봉, 수십척 돌기둥 아치가 장관을 연출했던 우문등 이경은 완전히 수장되고 옥순봉·귀담봉 등은 허리까지 물이 차 그 진수를 다시는 볼수 없게 됐다.
단양팔경은 충북 단양을 중심으로 주위 12㎞이내에 펼쳐진 우리나라 8대명승지의 하나. 수몰되는 사경외에 소백산계곡의 옥류를 따라 우뚝우뚝 솟은 사인암·상선암·중선암·하선암 등이 선경을 이룬다.

<정도전이 은거>
천연동굴인 고수동굴·천동동굴·우동동굴 등도 빼놓을수 없는 관광코스. 동굴내벽에 우후죽순처럼 돋아난 석순이 아름답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가장 아쉬운 것은 도담삼봉이 으뜸가는 절경이지만 물속에 그 모습을 영영 감추는 것이다.
높이6m의 중봉을 정점으로 남봉과 북봉이 나는 새처럼 수면위에 날개를 폈다. 중봉이 늠름한 장군의 기상이라면 남봉과 북봉은 장군의 호감을 얻기위해 교태를 부리는 여인의 자태와 흡사하다. 그래서 남봉을 첩봉, 북봉을 처봉이라 부른다던가.
한때 이곳에 은거했던 조선개국공신 정도전은 이 절경에 홀딱 반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지었다.
새벽안개속에 자태를 드러내는 도담삼봉은 한폭의 동양화나 다름없다. 달빛어리는 밤이면 삼봉의 그림자는 물결따라 춤을 추어 비경을 이룬다.
도담삼봉 이웃 강변마을(충북단양군 매포읍 도담리)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왔다는 노도수씨(66)는 『정든 임 보듯 보아온 도담삼봉이 물속에 잠긴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애석해했다.
노씨도 남한강물이 불기건에 정든 고향을 등져야하는 실향민의 한사람. 때문에 도담삼봉의 마지막 가을풍경을 보는 그의 감회는 그 누구보다도 깊다.

<관광객 늘어나>
우리나라 중부 내륙지방의 지도를 바꾸어놓는 충주다목적댐이 물막이를 시작한 것은 지난 1일. 현재 충주상류 5㎞지점 중원군 살미면 표고 83.2m까지 물이 차올랐다. 남한강 상류인 단양지역의 수몰예상시기는 내년 5월게. 이때쯤이면 충주와 단양을 잇는 남한강유역의 토지 1천9백만평, 가옥 2만1천9백41동, 도로 90.3㎞, 철도 9.4㎞ 등이 단양사경과 함께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올들어 단양을 찾는 관광객은 예년에 비해 30%가 늘었다. 올가을이 단양팔경의 진면목을 볼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도담삼봉을 뒤로하고 남한강하류를 따라 뱃머리를 돌렸다. 단양서쪽 8㎞지점, 장준리강변에 귀담봉이 우뚝 솟았다. 깎아지르듯 우뚝선 기암괴석들. 그 형태가 마치 거북같다해서 귀봉이라고도 부른다.
귀담봉하류 1㎞지점에 이르면 눈앞에 다가서는 옥순봉-. 이끼오른 괴석이 대나무순처럼 솟아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유람선에 동승했던 아마추어 사진작가 장한수씨(34·서울상도3동279)는 『옥순봉의 마지막 가을풍경을 필름으로 보존하겠다』며 연신 카메라셔터를 눌렀다.

<좋은수우 많아>
단양은 예부터 유명한 수석산지이기도 하다. 청풍단양을 거쳐 충주에 이르는 1백60리길 남한강 돌밭은 명석의 보고. 경우·문양석·미우·우중우·초컬릿석 등 20여종의 진귀한 돌이 이곳에서 발굴된다.
수석애호가 서인해씨(63)는 『천하 명석의 보고가 수장된다』며 섭섭해했다. 그는 10년전 지병인 고혈압치료를 위해 서울에서 단양으로 낙향한 사람이다.
우연히 수석수집에 취미를 붙여 1백리길 남한강돌밭을 누비다보니 혈압도 정상으로 내리고 위장병도 깨끗이 나았단다.
옥순봉 계곡을 수놓은 단풍이 마지막 가을을 불사르듯 붉게 탄다. 강은 지는 노을속에 출렁이고…. 이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이 거대한 현대화의 물결속에 사라지는 것이다. <김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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