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사’ ‘진실’… 아베 꾸짖는 회견 전 방명록에 남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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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오른쪽)와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왼쪽)이 9일 도쿄 히비야의 프레스센터에서 ‘전후 70년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대담하고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AP=뉴시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는 9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과 대담 형식의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도쿄 일본기자클럽 방명록에 ‘사무사(思無邪)’를 썼다. 논어에 나와있는 것으로 사특함이 없다는 뜻이다. 고노 전 관방장관은 ‘진실’을 기록했다. “먼저 사실,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의 두 주역이 아베 내각의 역사 수정주의 움직임에 일침을 가하기 위한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실제 회견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직언을 쏟아냈다. 회견에선 고노 전 장관이 무라야마 담화를, 무라야마 전 총리가 고노 담화를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주제별 주요 발언.

이날 무라야마 전 총리는 방명록에 ‘사무사(思無邪)’라는 글을 남겼고 고노 전 장관은 ‘진실(眞實)’이라고 썼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AP=뉴시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고노 전 장관(이하 고노)=“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측으로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조사 요청을 받고, 조사를 약속했다(1992년 1월). 총리의 귀국 후 조사가 시작됐다. 정부 부처에 위안부 관련 문서와 증인을 찾았고, 미국까지 가서 조사했다. 20여 년이 지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수십 년간 일한 관계가 잘 진행돼오다 최근 몇 년간 유감스런 상황이 됐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낮아졌다. 가장 가까운 한국과 이렇게 되면 안 된다. 서로의 이해를 늘려갔으면 한다.”

 ▶무라야마 전 총리(이하 무라야마)=“2기 아베 내각이 들어선 뒤 위안부와 관련한 확고한 증거가 없지 않느냐는 문제제기가 국회에서 있었다. 위안부를 상대로 사정청취(조사)를 벌였지만 이 내용을 입증할만한 추가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일어난 사실이니 사과하는 것이 맞고, 보상하는 게 맞다.”

 ▶고노=“위안부 모집, 관리에 관한 문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손을 잡아끌고 데려갔다는 내용이 문서에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담화에) 쓸 수는 없었다. 위안부들은 관헌에 의해, 또 거짓말이나 인신매매에 의해 모집됐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모아진 뒤 강제적으로 일하게 됐다. 네덜란드 여성을 끌고가 인도네시아에서 위안부로 일을 시키기도 했다. 이 사실은 네덜란드 정부의 조사에서도 밝혀져 있다. 분명한 사실이다. 강제연행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무라야마=“한국을 가보면 한국인 모두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한다.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일본이 (제대로)해야 한다. 한국에 ‘결자해지’라는 좋은 말이 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해결해야 하고, 나아가 정상회담을 열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한일간에) 대단한 문제는 없다.”

 ◆무라야마 담화와 아베 담화

 ▶무라야마=“1995년에 담화를 낸 것은 내게 역사적인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내각이 아니면 못하는 일, 전후 50년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 내 사명이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문제가 돼있다. 당시에도 침략이라는 말을 놓고 논의가 있었지만 일본의 군대가 중국을 침략하고 한국을 36년간 식민지배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노="(아베 총리가)새로운 담화를 내기보다 전후 70년 기념사업으로 외국의 원수나 일본 국민 모두가 참배할 수 있는 위령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 안보 법제

 ▶고노="아베 정권의 안전보장에 관한 법제 정비는 너무 빠르고 난폭하다. 지금의 아베 정권이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안전보장 정책에 관해 헌법학자들이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아베 총리의) 방식은 옳지 않다.”

 ▶무라야마="일본의 헌법은 집단적자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전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일개 내각이 바꿨다.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입헌주의를 부정하는 일, 헌법해석 개정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oh.yo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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