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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옆집 일조권 침해한 베란다 첫 철거 명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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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박모씨는 2009년 8월 서울 방배동에 신축된 6층 규모의 R빌라 1층의 한 가구를 분양받아 입주했다. 당시 박씨의 집엔 하루 3시간59분 정도의 햇볕이 들었다. 하지만 2013년 10월 R빌라 남쪽에 있던 2층짜리 단독주택이 헐리고 지상 4층 규모의 빌라가 들어서면서 하루 중 햇볕을 볼 수 있는 시간은 11분으로 급감했다.

옆집 사정도 비슷해 총 일조시간은 3시간28분에서 15분으로 줄었다. 게다가 신축 빌라 건축주가 3층과 4층의 면적 차이로 생긴 자투리 공간(22.2㎡)에 지난해 10월 불법 베란다를 설치하면서 햇볕 차단은 더욱 심화됐다. 박씨 등 R 빌라 1·2층 주민 7명(4가구)은 신축 빌라 건축주를 상대로 “일조권 침해에 따른 손해를 보상하고 베란다를 철거하라”며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6부(부장 윤강열)는 “빌라 신축에 따른 재산상의 손해와 위자료 등 총 8070만원을 배상하고 불법 증축된 베란다도 철거하라”고 8일 판결했다. 법원 관계자는 “인접 주택에 대한 일조권 침해를 이유로 확장된 베란다의 철거를 명령한 첫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동짓날을 기준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총 일조시간이 4시간 이상이거나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연속 일조시간이 2시간 이상이면 일조권이 보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는 이 기준에 따라 “신축 건물이 들어서기 전 누리던 권리가 침해됐으며 이는 R빌라 주민들이 참을 수 있는 정도(수인한도)를 넘어섰다”고 봤다.

 재판부는 “R빌라 1·2층 주민들은 새 빌라가 건축되기 전엔 3시간28분에서 4시간48분까지 비교적 양호한 일조 상태를 누렸다”며 “신축 빌라가 R빌라와 충분한 거리를 확보한다거나 3층과 4층의 건축 면적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등의 일조권 보호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 일조시간이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베란다는 준공 검사 이후 불법 증축된 것이고 건축법령상 일조권 사선 제한 규정을 위반해 일조권 침해가 심화됐다”며 철거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손해배상액을 하락한 집값의 70%로 정했다. 신축 빌라가 들어서면서 박씨의 집값은 약 2880만원이 떨어졌는데 건축주가 이 중 70%(약 2000만원)를 물어줘야 한다고 본 것이다. 햇볕이 줄어 얻은 정신적 고통은 1층은 가구당 300만원, 2층은 가구당 200만원씩 인정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일조권 사선제한=전용·일반주거지역에 집을 지을 때 주변 건물의 일조권 보장을 위한 규정. 건물 높이가 9m 이하일 때는 인접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1.5m 거리를 두고, 9m를 초과할 경우엔 해당 높이의 2분의 1 이상 거리를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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