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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뇌에 발생한 암 동시 치료…“폐암도 만성질환 시대 올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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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항암제 미디어포럼에서 참석자들이 각 나라의 암 발생 동향을 설명하고 있다.

폐암의 위협은 숨 쉬는 것만큼 가까이 있다. 전체 암 중에서 생존율은 최하위권, 반대로 사망률은 수년째 1위다. 폐암 앞에 인간은 무력했다.

그러나 10여 년 전, 폐암 유전자가 발견되면서 반격이 시작됐다. 이제 폐암은 물론 까다로운 전이암까지 잡는 표적항암제도 등장했다.

최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제51차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도 폐와 뇌의 암세포를 동시에 공략하는 표적항암제가 단연 주목을 받았다.

임상시험에는 한국·싱가포르 등 아시아를 포함해 세계 20여 개 나라가 참여했다.

지난달 15일, 싱가포르에서 표적항암제를 개발한 노바티스와 아시아권 의료진이 모여 폐암 표적항암제의 필요성과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망률 1위 폐암, 10명 중 8명은 3기 이후 발견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려되는 암은 폐암이다. 생존율(5년 기준 21.9%)은 평균(68.1%)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사망자는 최근 30년간 매년 증가해 2013년 1만7000명을 넘겼다.

폐암이 위협적인 이유는 조기 발견이 어렵다는 데 있다. 폐에는 통증을 감지하는 신경이 없다. 종양이 온몸에 퍼지고 나서야 병원을 찾는 환자가 전체의 80% 정도다.

존 케첨 노바티스 항암제사업부 신흥성장시장 수석부사장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은 여성과 젊은층에 발병률이 높은 비소세포폐암(선암)이 증가한다”며 “이 암종은 절반이 암 유전자 변이로 발생하며, 비흡연자에게서도 흔하다”고 말했다.

폐암의 강한 공격성도 사망률을 높이는 요인이다. 빠르게 자라고 전이도 잘된다.

특히 폐암의 80~90%를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은 10건 중 7건 이상이 2기 이후에 발견된다. 폐암세포는 혈관이나 림프관을 타고 간·뇌·척추 등 주요 장기로 퍼진다.

혈관·뇌 장벽, 뇌전이 치료 어렵게 해

발생 빈도와 위험도로 볼 때 가장 위험한 전이 부위가 바로 뇌다. 실제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30~50%가 폐에서 뇌로 전이된다. ‘몸의 사령관’인 뇌는 작은 종양에도 치명적이다.

두통·신체마비·인지장애 등 신경 증상을 유발한다. 치료도 어렵다. 크기와 위치에 따라 수술이 제한적이고, 방사선 치료는 뇌조직 손상이나 인지장애 등 부작용을 유발한다.

투병으로 몸이 약해지면 전이암을 관리하기가 더욱 어렵다. 우리나라가 뇌 전이암 환자를 말기암 환자에 준해 치료·관리하는 이유다.

가장 좋은 치료법은 폐와 뇌를 동시에 공격하는 항암제 개발이다. 싱가포르 항암제 포럼에서 만난 서울대병원 내과 방영주(의생명연구원장) 교수는 “기존 항암제는 혈관·뇌장벽(Blood Brain Barrier)에 막혀 뇌 전이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혈관·뇌장벽은 바이러스나 세균으로부터 뇌를 보호하는 뇌척수막, 뇌혈관 등을 총칭한다. 폐에 항암제가 아무리 잘 들어도 이 장벽을 뚫지 못해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정밀종양학이 발달하면서 혈관·뇌장벽을 넘어 뇌에 작용하는 표적항암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이카디아(성분명 세리티닙)가 대표적이다. 자이카디아는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유전자(ALK) 이상이 발견되는 2~7%에 효과를 보이는 표적항암제다.

이상 ALK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에 작용해 종양이 자라는 것을 막는다. 특정 신호만 차단하므로 부작용은 적고, 치료 효과는 높다.

자이카디아, 폐와 뇌의 암 동시에 잡아

노바티스는 앞서 20여 개 나라, 246명의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글로벌 임상1상에서 자이카디아가 환자의 암세포 성장을 막는 무진행(無進行) 생존기간을 최대 18.4개월까지 늘렸다고 발표했다. 사상 최장 기록이다.

기존의 폐암 표적항암제보다 혈관·뇌장벽도 훨씬 잘 통과한다. 지난 1일, ASCO에서 발표된 자이카디아 임상2상 연구를 보면, 뇌 전이가 확인된 비소세포폐암 환자 150명 가운데 기존에 1차 표적항암제 치료를 받은 집단(100명) 중 38.6%, 자이카디아를 처음 이용한 집단(50명) 중 63.7%에서 뇌종양이 30% 이상 작아지거나 사라졌다.

항암제의 내성을 극복하고, 뇌 전이암의 해결 가능성을 연 자이카디아에 미 식품의약국(FDA)은 ‘혁신적 치료제’라는 이름표를 붙여줬다.

우리나라에서는 1차 표적항암제 크리조티닙으로 치료를 받은 국소진행성·전이성비소세포폐암 환자 치료에 자이카디아를 사용할 수 있다. 지난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 시판되고 있다.

마가렛 듀건 노바티스 글로벌 프로그램 수석부사장은 “표적항암제를 이용해 폐암도 만성질환처럼 관리하며 사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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