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느 시간강사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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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상자 속의 사나이'로 규정한 한 시간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사학위를 갖고도 교수로 임용되지 않으면 학문적 활동이 불가능한 한국의 시간강사는 그의 표현처럼 '상자 속의 사나이' 일 수밖에 없다.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한들 그 강사료는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도 일용 잡급직으로 규정돼 방학에는 전혀 강사료를 받지 못한다. 직장 예비군 편성과 건강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교육법상의 교원으로 보호받지도 못한다.

'상자 속의 사나이'를 양산한 책임은 바로 대학과 교육부에 있다. 대학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규정된 교수비율을 지키지 않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적지 않은 대학에서 시간강사 강좌 비율이 여전히 70%를 넘기고 있고 서울대도 약 60%에 이른다.

여기에 교육부도 강사 3인을 채용할 때 교수 1명으로 인정해줘 대학의 장단을 맞춰주고 있다. 자연히 좁아진 문을 통과하기 위해 실력보다 학맥.인맥이 동원되고 학과 교수들에 대한 무한한 봉사와 같은 로비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약 4만5천여명에 이르는 대학강사들이 불안한 신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전세계는 지식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반면 우리 사회의 기초학문 위기는 필경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스승을 보고 어떤 학생들이 학문에 종사하겠다고 하겠는가.

많은 투자로 길러낸 이들 지적 자산이 사장되지 않도록 이른 시일 내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강사들의 문제가 이미 오래전에 제기됐음에도 이를 외면해온 대학과 교육부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최소한 강사들이 교육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