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는 지금 '자유무역 전쟁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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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뉴욕=연합]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점령 통치를 두달째 받고 있는 이라크가 외국 기업들의 '거대한 자유무역지대'로 변신하고 있다고 뉴역 타임스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타임스는 "종전 이후 바그다드 등 주요 도시에 한국산 가전제품을 비롯한 외국제품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으며, 특히 바그다드는 마치 '외국기업들의 판촉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판매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라크는 전쟁 직전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경제권이었지만 전후 미국 군정이 수입을 사실상 자유화하면서 노천시장과 상점에 외국상품들이 넘쳐나고 있다"며 "하지만 그로 인한 문제점도 크게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과 중국.일본 등으로부터 수입된 최신형 에어컨이 여름철을 맞아 날개 돋친듯 팔리고 있으며, 취사용 연료 걱정을 덜어주는 이동식 석유난로 등이 호황을 맞고 있다.

심지어 싸구려 사탕조차 인근 이란 등지에서 수입품이 쏟아져 들어와 바그다드의 한 사탕공장 주인은 "전쟁 전 3천디나르(미화 약 1.5달러)였던 사탕 한 상자값이 1천디나르로 폭락했다"고 전했다.

이라크에 외국상품 수입이 크게 늘어난 것은 전후 경제제재 해제로 수입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쟁 후 달러당 3천디나르였던 환율이 1천3백디나르까지 떨어지는 등 이라크 통화(디나르화)의 가치가 급등하면서 수입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하락한 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국산 상품의 범람은 구매력이 있는 이라크인들에게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있으나 미국 점령당국에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잘못하면 국영기업을 비롯한 낙후된 이라크 기업들의 붕괴로 이어져 경제 안정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는 "이라크를 개방된 자유시장경제로 전환시키는 것이 궁극적 목표인 미국으로서는 경쟁에 뒤처진 이라크 산업을 신속히 도태시키거나 부작용을 무릅쓰고 계속 생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 가운데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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