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球와 함께한 60年] (44) 대표팀 일본 轉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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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80년 8월 일본에서 열린 제26회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야구협회 집행부는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대표팀이 외국의 프로팀들처럼 스프링캠프를 차리는 게 좋을 것 같다. 제주도는 스프링캠프를 차리기에 적절치 못하니 일본 전지훈련을 추진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그래서 최인철 부회장과 내가 일본 롯데 오리온즈의 구단주 신격호 회장을 찾아갔다. 우리는 "이번 세계선수권은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재일 한국인들의 사기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프로팀과 합동훈련을 하면 한국 대표팀의 기술 및 팀워크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롯데 오리온즈의 가고시마 훈련에 국가대표팀이 합류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신회장은 "일본에 가서 야구단 사장과 협의, 긍정적으로 추진해보죠. 그런데 재정적으로 충분하게 지원되고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리고는 "성사가 되면 개인적으로 대표팀의 숙식비를 50% 부담토록 하겠습니다"는 반가운 제안을 했다.

며칠 뒤 롯데 회장 비서실에서 연락을 해 전지훈련을 희망하는 날짜와 기간을 물었다. 협회는 2월 15일부터 3월 2일까지 보름간 훈련을 하고 싶다고 통보했다.

롯데 측은 "롯데 오리온즈 선수들이 묵는 호텔에서 함께 지내며 훈련하시지요"라며 흔쾌히 요청을 받아들였다.

전지훈련에서 대표팀을 총괄하는 단장을 맡게 된 나는 하나의 욕심이 생겼다. 대표팀 용품을 지원해줄 스폰서를 구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대표팀 용품 스폰서가 일반화 되어있지만 그때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나는 한국 미즈노사의 사장과 접촉해 대표선수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유니폼을 비롯한 야구용품 전부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건은 세계선수권 때 미즈노 유니폼을 입겠다는 것 하나였다.

2월 25일 가고시마 훈련장에 도착하니 미즈노사에서 대표팀 전체에 필요한 용품을 준비해놓았다. 품질이 뛰어난 글러브와 스파이크,배트 등을 지원받자 선수들의 사기는 부쩍 올라갔다.

대표팀이 가고시마에서 훈련하는 동안 롯데 오리온즈 소속이었던 장훈과 백인천은 자신들의 훈련이 끝나면 우리 선수들을 따로 불러 스윙을 지도해줬다.

이들은 정신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훈련 효과는 만점이었다. 8월 세계대회에서 한국은 일본에게 6-4로 역전승을 거두는 등 9승2패의 성적으로 쿠바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한달쯤 지난 뒤 보안사령부에 근무하던 후배 소령이 긴밀하게 "야구협회 김종락 회장이 물러나셔야 할 것 같다"는 말을 전해왔다.

제5공화국의 서슬 퍼런 정화운동의 일환으로 체육단체 자체 정화가 곧 실시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후임 회장으로 임광정 한국화장품 사장이 올 것 같다는 말에 나는 '먼저 물러나야겠다'는 결심을 굳혔고, 김종락 회장.최인철 부회장과 함께 야구협회를 떠났다.

이용일 前 한국 야구위원회 사무총장
정리=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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