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세계 서점가] 혁명이 필요하다는 영국 보수당 전략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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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보다 인간적인 (원제 More Human)
스티브 힐튼 지음, 영국 WH 앨런출판사

영국, 특히 1990년대 말 보수당 정치에 익숙하지 않다면 스티브 힐튼이란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게다. 그러나 사정을 안다면 보수당의 집권을 가능케 한 전략가라고 할 게다.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으로 이어지는 13년 노동당 정권 아래에서 지리멸렬했던 보수당은 40세 안팎의 젊은 지도자 데이비드 캐머런 아래서 탈바꿈했다.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란 공감적 보수주의가 요체였다. 그게 스티브 힐튼의 아이디어였다. 이른바 ‘힐트니즘’이었다. 힐튼은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펼치려 할 때마다 관료들과 맞붙었다. 2년 후 그가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을 때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그런 그가 재충전 끝에 2년 만에 들고 온 책이 『보다 인간적인(More Human)』이다. 그가 구현하길 바랬으나 못한 정책의 되뇜이라고 여긴다면 오해다. 오히려 발전적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정부·학교·보건·기업·빈곤·불평등 등 문제에서 보다 인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익명의 우리와는 동떨어진 중앙집권화된 거대 기구들은 우리 편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자신들의 편일뿐”이라며 “점진적 변화론 안 된다.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주의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예를 들어 국민 혈세가 들어간 금융기관의 경영진은 고위 관리 이상의 급여를 받아선 안 된다고 했다. 도심 공간을 더욱 보행자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거나 급여나 복지를 늘리는 회사엔 세제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도 했다. 다만 문제 해결을 위해 다들 공직에 도전해야 한다거나 16세 이하에겐 스마트폰 사용을 불법으로 하란 주문에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한 가지 아쉬움이 더 있는데 캐머런 정부에서 겪은 처절했을 법한 체험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국이 민주주의 국가란 건 말뿐이다. 실제론 선거 결과가 어떻든 상관 없는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운영된다”, “영국과 미국의 기득권층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도둑정치’를 경멸하며 자신들이 낫다고 여기나 그들이 더 나쁘다. 러시아의 부패한 관료들은 최소한 위선자는 아니다”라고 말한 대목 정도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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