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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테이블 돌아가며 한 곡씩 릴레이…사랑 고백도 이곳에서 한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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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 붕괴 직후 등장해 인기
젊은이·노인 함께 부르며 즐겨
러시아인의 대표적 친목장소로
가라오케 세계선수권대회 열기도

러시아에서 가라오케가 아시아 만큼 인기 높지는 않다. 하지만 요즘엔 가라오케를 찾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한국처럼 방이 아닌 탁트인 홀 같은 곳이다. [보스토크 포토]

2016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제1회 러시아-아시아 가라오케 토너먼트 ‘아시아선수권대회 ’가 열린다.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에서 가라오케라는 오락은 평범한 취미에서 진지한 대회로 진화해갔다.

“내게 가라오케 가수들은 제2의 가족이다.” 지난 2006년 세계 가라오케 선수권대회에서 백명에 가까운 경쟁자들 사이에서 5위를 차지한 가라오케의 ‘베테랑’ 미하일 할데이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는 지금까지 모든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제는 심사위원으로 초청받기도 한다. 그는 “무대에서 노래하게 되면 다른 이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데 사람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 그런 식으로 굳건한 가족 관계가 형성되고 언제라도 도와주러 올 진정한 친구들이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고 말한다.

2006년 가라오케 세계선수권은 헬싱키와 에스토니아 사이 발트해를 오가는 해상 크루즈 정기선 ‘갤럭시’호 선상에서 치러졌다. 여객들은 사우나에서 쉬면서 마이크를 잡을 수 있었고 심지어 마이크를 들고 수영장에 뛰어들 수도 있었다. 이 행운아들은 28개국에서 온 참가자들이었다. 유럽(프랑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핀란드·스웨덴 등), 아시아(중국·태국 등)에서 왔고 호주와 아프리카(남아공)에서도 왔다.

가라오케 선수권대회의 분위기는 따듯하고 우호적이다. 행사는 보통 홀뿐 아니라 무대가 딸린 카페에서도 열린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의 수준은 다양하다. 조금 틀리거나 못 끝내는 선수도 있지만, 화려하고 심지어 재즈 분위기가 물씬 나는 목소리를 가진 수준급 아마추어 가수가 대부분이다. 연출도 잘해서 공연도 지루하지 않다. 상도 ‘어마어마’할 수 있다. 가라오케 기계를 살 수 있는 5만 루블(1000달러)짜리 증서도 있고 터키 여행권도 있다.

2010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은 특히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인기상 수상자에게 펠메니(러시아 고기만두) 100만 개를 상으로 안겼기 때문이다. 수상자는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 출신의 에두아르도 피멘텔이었다. 심사위원들이 뽑은 우승자는 핀란드 대표였다.

2위는 러시아가 차지했다. 상을 탄 위장병 전문의 표도르 리티코프는 푸치니 오페라의 아리아와 이탈리아 노래 ‘눈물 속에 피는 꽃(L'Immensita)’을 원어로 불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 의사 겸 가수는 2006년부터 인기몰이를 했다. ‘골로스(голос·목소리)’ 쇼에 출연했고, 음악대학 및 교회 합창단 수준의 콘서트 무대에 초청받았으며, 특별히 그를 위한 노래도 작곡됐다.

“사람은 이렇게 큰 대회를 앞두고 목소리와 예술적 기교를 다듬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도와준다. 그렇게 도와주는 선생도 있다.” 모스크바 남부에 있는 ‘카라멜’ 클럽의 공동소유주인 발레리가 말한다. 이 클럽은 세계선수권대회가 치러지는 무대다.

◆가라오케 스포츠의 역사=갤러기호에서 열린 2006년 대회는 시작이었다. 당시 모스크바에 모인 사람은 100여 명이었다. 2014년 선수권대회에는 10개가 넘는 지역에서 참가했고 2015년엔 이미 20개 넘는 지역에서 수천명이 참여했다.

러시아 가라오케 선수권대회 총괄 프로듀서 미하일 베빙은 2016년 ‘아시아선수권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 러시아어의 인기는 중국인들이 선수권대회에서 러시아어로 노래를 부를 정도로 높다”며 “무대를 보지 않았더라면 노래 부르는 이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감탄했다.

그는 “러시아 문화, 러시아 창작품의 인기를 높이는 것이 우리에겐 중요하다. 나는 올해 우리 참가자들이 팝송에 집중하는 것을 그만두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러시아어로 노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하일 베빙은 2006년 러시아의 전문 가라오케 활동의 탄생 때부터 선수권대회의 프로듀싱을 맡으며 열심히 일을 해왔다. 그는 “2016년에는 이 프로젝트가 사회적 의미를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그 이유로 고아원과 장애인 시설을 위한 자선 대회가 열린다는 점을 꼽았다.

◆러시아의 가라오케 역사=러시아의 가라오케 클럽은 소련 붕괴 직후 등장했다. 처음에는 몇몇 곳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수없이 많다. 20여 년 동안 이 산업이 크게 성장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러시아는 축배 전통으로 유명한, 노래하는 나라가 아닌가.

러시아인들은 생일·기념일을 축하하고 노래의 힘을 빌려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가라오케 클럽에 온다.

러시아식 가라오케 클럽의 특징은 보통 마이크가 테이블에서 테이블로 넘어가는 커다란 개방형 홀 형태라는 점이다. 테이블 4~5개가 더 있는 게 마음에 안 든다면 돈을 더 내고 VIP-홀을 찾으면 된다.

인기 TV 진행자인 마샤 말리노프스카야가 가라오
케 클럽 ‘히스테리’ 에서 생일 파티를 열고 있다.
[리아 노보스티]

보통 가라오케 바 파티엔 머피의 법칙이 적용돼 완전히 다른 취향을 가진 인물들의 모임이 되곤 한다. 한 테이블에는 감상에 취해 가슴을 부여잡고 ‘교도소 낭만 가곡’ 즉 러시아 샹송을 애창하는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들이 앉아 있다.

건너 테이블 젊은이들은 이 가슴 미어지는 공연이 끝나길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앨리샤 키스나 레이디 가가의 노래 같은 어려운 최신 히트팝송을 멋지게 부르길 희망하며 기쁘게 마이크를 차지한다.

이어 세 번째 테이블은 훌륭한 노래에 열심히 박수를 쳐 준 뒤 넷이서 슬픈 멜로디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릴레이는 이어진다. 악보에 맞추진 못해도 모두 마음을 실어 노래한다. 운이 좋으면 러시아국립연극대학의 성악과 학생의 수준 높은 미니콘서트를 즐길 수도 있다.

일에 치인 사업가 차림의 독신 가수가 나와 화면과 1대 1로 노래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이고 취향과 노래 수준이 다르지만 손님들은 박수로 응원하고 히트곡을 함께 부르며 ‘안면’을 트고, 춤을 권하고, 옆 테이블 사람들에게 노래를 바치기도 한다.

“러시아에서는 작은 룸식 가라오케가 정착되지 못했다. 우리는 콘서트 형식이 필요하다! 국민 가창의 시대는 가고, 쇼비즈니스의 시대가 왔다. 가라오케는 멋지게 이 틈새를 채웠다.”

비영리 클럽가라오케 발전 조합 ‘전국 가라오케업자 동맹 ’의 회장 뱌체슬라프 로푸노프가 말한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은 자신을 표현하길 꿈꾸는 매우 창조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느샌가 가라오케가 단순한 여가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회의 수준으로 발전한 것도 그리 놀랍지 않다.

소피야 라옙스카야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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