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에게 감동과 위로 … 25년 이어온 교보 ‘광화문글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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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글판’이 올해로 25년을 맞았다. 그간 실린 글 72편은 시민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중앙포토]

자영업자 김태영(45)씨는 6년 전 시내버스 뒷좌석에서 눈물을 훔친 적이 있다. 그를 울린 건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에 가로 20m, 세로 8m 크기로 내걸려 있던 ‘광화문글판.’ 당시 그곳에는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장석주 ‘대추 한 알’)라는 시구가 적혀 있었다. 김씨는 “사업에 실패하고 실의에 젖어있을 때 그 글이 내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해줬다”고 말했다.

 서울시 한복판에서 시민에게 감동과 위로를 안겨줬던 광화문글판이 27일로 25주년을 맞는다. 교보생명은 이날 ‘그곳에 광화문글판이 있었네’라는 제목으로 25주년 기념 공감콘서트를 연다.

 글판은 1991년 1월 교보생명 창립자인 고 신용호 명예회장의 제안으로 처음 등장했다. 첫 작품은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는 딱딱한 격언이었다. 감성적 글판으로 변한 것은 98년. 온 국민이 외환위기로 고통을 겪자 신 명예회장은 “기업 홍보는 생각하지 말고 시민에게 위안을 주는 글판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변화의 시초는 고은의 시 ‘낯선 곳’에서 따온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라는 문구였다.

 현재의 글귀인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보았으면’(함민복 ‘마흔 번째 봄’)까지 지난 25년간 글판을 채운 글은 총 72편. 시인·소설가·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가 글을 엄선했다.

 ‘최다 글판작가’는 총 7편을 올린 고은 시인이다. 교보생명은 자사 홍보가 아니라 시민과의 공감과 소통 수단으로 글판을 활용했다. 이명천 중앙대 교수는 한 논문에서 “공익적 주제의 옥외광고로 문학 콘텐트를 활용해 차별화된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옥외광고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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