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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인생 역전’ 전창진 … 불법 도박으로 무너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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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 2월 20일 프로농구 kt와 SK의 경기 4쿼터. 전창진 당시 kt 감독이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경찰은 전 감독이 이날 경기 3·4쿼터에 주전을 빼고 후보를 기용해 일부러 크게 져 부당이득을 챙겼는지 조사하고 있다. [사진 KBL]

2013년 3월 프로농구는 승부조작 파문으로 홍역을 치렀다. ‘스타 출신’ 강동희(49) 전 동부 감독의 승부조작 연루 사실이 밝혀지면서 농구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농구계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2년2개월 만에 이같은 일이 재발했다. 이번엔 프로농구 통산 최다승 2위에 올라 있는 전창진(52)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이 의혹을 받고 있다.

 전 감독은 부산 kt 감독 재직 당시 사채업자로부터 3억원을 빌려 불법 스포츠 도박에 베팅해 부당한 이득을 챙긴 혐의로 25일 출국금지됐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지난 2월 kt가 두자릿수 점수 차로 패한 두 경기를 승부조작 의혹 경기로 지목했다. kt는 2월 14일 인삼공사전에서 2쿼터까지 37-38로 접전을 펼치다 3쿼터 6득점에 그치며 63-75로 패했다. 2월 20일 SK전에서는 초반부터 끌려가다 60-75로 졌다. 전 감독은 2014~15 시즌이 끝난 뒤 kt에서 인삼공사로 옮겼다. 반준수 kt 홍보팀 차장은 “선수 기용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당시 상황과 감독 교체건은 무관하다”고 말했다.

 전 감독의 농구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용산고-고려대-삼성전자를 거친 엘리트 출신이지만 고질적인 발목 부상 때문에 24세에 선수 생활을 일찍 접었다. 이인표 당시 삼성전자 단장의 권유로 구단 주무를 맡은 게 그의 인생을 바꿨다. 1988년부터 10년간 삼성전자 주무로 일한 그는 선수 스카우트, 팀 관리 뿐 아니라 구단 홍보에 물품 정리까지 도맡았다. 1999년 원주 나래(현 동부) 수비코치를 맡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전 감독은 2002~03 시즌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뒤 ‘우승 제조기’로 명성을 떨쳤다. 정규리그에서만 4차례 우승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도 3차례 정상에 올랐다. 통산 426승을 거둬 유재학(52) 모비스 감독에 이어 다승 2위에 올랐다.

 전 감독은 코트에선 완벽주의자다. 선수들의 조그만 실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외국인 선수에게도 불호령을 내린다. 하지만 가끔 무성의한 경기 운영으로 구설에 올랐다. 4쿼터에 큰 점수 차가 나지 않는데도 주전을 대거 빼며 경기를 포기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그래서 “스포츠토토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고, ‘전토토(전창진+스포츠토토)’라는 별명도 얻었다. 전 감독은 “왜 내가 전토토로 불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전 감독은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챙기고, 힘든 일이 있으면 도움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다. 2005년부터 전 감독과 함께 한 김승기(43) 인삼공사 코치는 “감독님은 후배들이나 지인들이 부탁하면 쉽게 돈을 빌려주신다. 경찰 조사에서 언급된 인물도 감독님의 지인이다. 그러나 당시 전력차 때문에 진 것일 뿐 감독님이 직접 승부조작을 했다고 보진 않는다”고 주장했다.

 전 감독의 연루 의혹으로 프로농구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이미 강동희 전 감독이 2013년 승부조작 혐의로 프로 스포츠 지도자 사상 처음으로 실형(징역 10월, 추징금 4700만원)을 선고받았다. 프로농구를 주관하는 KBL은 강 감독을 영구 제명했다.

 그러나 나아진 건 없었다. 2013년 3월 불법 스포츠도박 신고센터인 클린바스켓센터를 개설, 운영했지만 이미 드러난 사건을 신고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KBL 관계자는 “전 감독의 연루 의혹을 기사를 통해 알았다”고 말했다. 사전 예방을 전혀 못했다는 의미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는 ‘이 기회에 불법 스포츠도박 배후세력의 싹을 다 잘라야 한다’ ‘감독뿐 아니라 심판, 관계자들도 조사하라’ 등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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