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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멍멍~ 사람만 시구하란 법 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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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달 27일(한국시간)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가 열린 탬파베이 트로피카나 필드. 경기 시작 전 경찰관과 개가 나란히 마운드에 올랐다. 경찰관은 개의 입에 공을 물려준 뒤 함께 포수 쪽으로 걸어갔다. 견공이 입에 문 공을 홈플레이트에 떨어뜨리는 순간 관중은 기립박수를 쳤다.

 시구(始球)를 한 개는 아약스(Ajax)라는 이름의 경찰견이다. 탬파베이의 연고도시 세인트피터스버그 경찰서 소속인 아약스는 임무 수행 도중 방울뱀에게 물려 사경을 헤매다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탬파베이 구단은 아약스의 용맹함이 승리를 부를 것이라 믿었고, 그에게 시구를 맡겼다. 이날 탬파베이는 토론토를 5-1로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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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야구 시구는 1908년 11월 22일 일본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와세다대와 메이저리그 선발팀의 친선 경기에서 나왔다. 당시 오쿠마 시게노부 전 일본 총리가 시구를 맡았다. 미국에선 1910년 윌리엄 태프트 27대 대통령이 최초의 시구자다. 경기 시작을 알리고 홈 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시구는 이후 정치인과 유명인사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시구에 의미와 스토리를 입히면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구단들이 깨달으면서 마운드에 서는 주인공들도 다양해졌다.

  미국에서는 동물 시구가 그리 생경하지 않다. 구단들은 매년 반려견의 날 행사를 여는데 이때 ‘개 시구’를 종종 볼 수 있다. 2006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경기에선 원숭이가 시구를 한 적도 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다음달 11일 대구에서 열리는 삼성과 한화의 경기에 개가 시구 행사에 나설 예정이다. 정확하게는 입으로 공을 받아내는 ‘시포구(始捕球)’ 행사다.

 2011년 4월 20일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홈경기에서는 팔 하나와 3개의 바퀴로 이뤄진 로봇이 마운드에 올랐다. 과학의 날 행사에 초청된 ‘필리봇’은 팔을 돌려 힘차게 공을 던졌다. 필라델피아대 연구팀이 개발한 이 인공지능 로봇은 사람이 던지는 속도만큼 빠르게 던질 수 있었지만 구단의 요청으로 시속 50㎞ 정도의 느린 공을 던졌다.

 2013년 5월 13일 미국 오클랜드 O.co콜리시움에도 로봇이 시구 행사에 등장했다. 캔자스시티에 사는 14세 야구광 닉 르그랜드는 오클랜드의 홈경기에서 시구를 하는 게 소원이었다. 그러나 재생불량성 빈혈로 면역체계가 약해진 탓에 그는 집 바깥으로 나설 수 없었다. 르그랜드가 사는 캔자스시티에서 오클랜드 구장까지의 거리는 약 2900㎞.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정보통신 기업 구글이 도움을 줬다. 구글은 르그랜드의 집에 모형 야구장을 만든 뒤 경기장에는 원격조종으로 움직일 수 있는 피칭 로봇을 세웠다. 경기 당일 르그랜드가 집에서 공을 던지는 순간 센서를 통해 원격 신호를 전달받은 로봇은 경기장에서 포수를 향해 공을 던졌다. 야구와 첨단 과학이 빚어낸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막내구단 kt 위즈는 지난 3월 31일 홈 개막전에서 인상적인 시구를 선보였다. 전광판 꼭대기에 설치된 수원 화성(華城) 모형의 문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고, 전광판에서 홈플레이트까지 연결된 선을 따라 불꽃 공이 날아들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kt가 수원과 만나 야구로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잘 보여준 명품 시구였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26일 전적

▶ NC 13-2 두산 ▶ LG 5-2 kt
▶ 삼성 4-0 넥센 ▶ 롯데 10-5 SK
▶ KIA 10-3 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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