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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기업정책=친국민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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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탈무드의 우화 한 토막이다. 뱀 꼬리가 화가 잔뜩 나서 머리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어째서 나는 항상 꽁무니만 따라다녀야 하는 거야? 이건 공평하지 못해. 나도 똑같이 뱀의 한 부분인데 말이야!” 꼬리는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았고 마침내 앞장 서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얼마 못가 뱀은 도랑에 빠졌고 탈출하자마자 다시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가 상처투성이가 됐다. 가시덤불을 나온 뱀은 또 다시 불구덩이 속에 빠져 머리와 꼬리 모두 불타 죽고 말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꼬리와 머리는 한 몸이다. 역할과 기능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생사를 같이하는 공동운명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한 몸인 걸 잊은 채 각자의 욕심만을 내세우며 상대방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모두가 자멸하게 된다. 국민들의 기업에 대한 오해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 볼 수 있지 않을까.

 최근 기업에 대한 요구가 나날이 늘고 있다. 기업이 이익을 다소 희생해서라도 월급을 올려 근로자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정년을 연장해 장년층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청년들을 위한 신규채용도 늘리라 한다. 복지세수가 부족하니 기업들이 세금도 더 내고,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공헌 활동도 더 많이 하라고 한다. 대기업일수록 이러한 과도한 요구는 더 늘어난다. 그러나 이는 기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기업이 국민과 별개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퍼져있는 듯하다. 기업은 정말 국민과 별개일까?

 우리 제조업 기업이 1년에 1000원을 번다면 그 중 40원 정도가 순이익이다. 나머지 960원은 재료비·인건비·영업비·전기료·세금 등의 이름으로 협력업체·임직원·정부 등 이해관계자(stakeholder)에게 나눠진다. 재료비는 협력업체로 가서 그 업체의 재료비, 인건비로 다시 나간다. 세금도 정부가 다시 국민을 위해 다양하게 사용한다. 결과적으로 기업 매출 대부분이 전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 국민 호주머니로 들어가지 않는 것은 외국에서 수입한 재료비와 해외 기업에 지불하는 특허권료 정도 뿐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자신에게 돌아가는 960원은 잘 모르고 40원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듯하다. 게다가 40원 모두 대주주가 가져간다고 오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 매출에서 대주주에게 돌아가는 몫은 0.1%도 채 되지 않는다. 결국 기업 매출 중 99.9% 이상은 전 국민에게 나눠지는 것이다. 기업이 국민과 별개일 수 없는 이유다.

 기업 매출이 국민에게 돌아가듯 거꾸로 기업에 부담을 주면 그 부담의 99.9%도 전 국민에게 돌아간다.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면 당연히 그 부담은 국민이 지게 마련이다. 기업이 법인세를 납부하는 것은 주주·임직원·협력업체 등 국민 모두가 납부하는 것과 다름없다.

 세계 각국이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풀어 외국기업의 매출을 자국으로 끌어오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외국기업의 국내 공장을 한국기업의 해외 공장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이 해외로 떠나게 되면 국민에게 분배되던 기업 매출이 송두리째 외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뜻한다. 국가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기업의 ‘매출’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국민들은 기업의 매출에는 관심이 적은 듯하다. 지난 10년 간 연평균 6% 이상씩 성장해왔던 우리 기업들이 지난해 -2.5%로 곤두박질 신세를 보였다. 매출이 줄면 우리 국민들에게 나눠지는 파이가 그만큼 작아진다. 파이가 줄어드는 위기를 제대로 보지 못해 자칫 파이가 통째로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은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 매출을 늘릴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할 때다. 탈무드 이야기의 뱀처럼 꼬리와 머리가 다투다 죽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과 국민을 양분하는 발상을 없애자. 기업이 곧 국민이다. 친기업정책이 따로 있고 친국민정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친기업정책은 없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