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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가 더 기대되는 오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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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복
이상복 기자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지난 24일 뉴욕타임스 일요판엔 ‘위대한 전직 대통령 만들기’란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미국 보이시 주립대 저스틴 본 교수가 퇴임 대통령의 성공 조건을 분석한 글이다. 요약하면 성공한 전직 대통령은 백악관에 있을 때보다 더 왕성하게 활동하고 더 많은 성취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는 현역 시절 인권 외교를 내세웠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단임 대통령에 머물렀다. 하지만 퇴임 후 세계 분쟁 지역에서 해결사 역할을 해내면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반면 물러난 후에도 정파를 만들고 선거 정치에 매몰된다면 실패한 전직(前職)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 탈당하면서까지 다시 대선전에 뛰어든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그 예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백악관을 떠난 대통령들을 이 잣대로만 재단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2001년 퇴임 후에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요즘 신뢰의 위기에 놓여 있다. 돈 문제 때문이다. 클린턴 부부는 지난 16개월에만 326억원의 강연료 수입을 올렸다. 다음 대권에 도전하는 부인 힐러리가 아무리 서민 정치를 외쳐도 잘 먹혀 들지 않는 이유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단을 통해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 일으켰던 이라크 전쟁의 늪에 여전히 빠져 있다. 최근엔 대선 출마를 앞둔 동생 젭 부시의 공개 비판까지 받았다. 따라서 성공한 전직 대통령이 되려면 돈 문제에서 자유롭고, 과거의 정책이 발목을 잡는 일도 없어야 할 듯하다.

 이 점에서 ‘전직’의 새 역사를 쓸 걸로 기대되는 인물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오바마는 2017년 1월 퇴임 때의 나이가 55세에 불과하다. 파당 정치에 고전해 온 그가 정파적 이해관계에 빠질 거라고도 믿기 어렵다. 클린턴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 삼아 돈 문제에도 각별히 조심할 게 분명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을 그만두면 빈민지역 공동체 활동가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흑인 등 소수계에게 꿈과 일자리를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시카고 비영리 빈민조직 활동가로 일하다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이후 인권 변호사로 일하다 상원의원이 됐다. 흑인 빈민을 위한 활동이 정치적 뿌리인 셈이다. 그는 대통령 재임 시 열정을 갖고 추진했던 군인가족 지원 사업도 계속할 뜻을 밝혔다. 빈민 활동과 군인 가족 지원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절묘한 조합이다.

 대통령을 그만둔 후 정치를 꿈꾸게 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신선하다. 첫 흑인 대통령인 그는 흑백 갈등을 치유하고 사회 통합을 이룰 최적의 인물이다. 대중 소통에도 능하니 캠페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도 있다. 그의 ‘담대한 희망’은 퇴임 후 비로소 완성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오바마의 현재보다 미래가 더 기대된다.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