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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외눈으로 일본을 보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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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도쿄 총국장

3년 전 미국 워싱턴의 한 사무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간부와 일본 유력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댔다. 물론 100% 비공개의 정책간담회. 한 참석자의 전언이다. 간담회 중반 돌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조셉 나이(현 하버드대 교수) 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 의장과 존 햄리(전 국방부 부장관) CSIS 소장,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의 돌발 제안 때문이었다.

 “이참에 일본 오키나와(沖繩)의 미군기지를 일본 자위대 기지로 전환하고, 그걸 미군이 임차하는 형태로 바꾸면 어떻겠느냐. 일장기 걸고 그 옆에 미국 성조기를 달면 된다.”

 당시 집권당이던 일본 민주당의 참석자 전원이 얼어붙었다. 긴 침묵을 깬 건 당시 ‘야당 의원’이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였다. “아니, 미국이 일본에서 도망가려는 겁니까.”

 아베의 이런 위기의식은 결국 그로부터 3년 만인 지난 4월 양국의 군사협력체제를 강화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군사 도우미’를 자처하는 대신 ‘여차하면 도망갈지 모르는’ 미군을 일본 안에 꼭 가둬 두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를 우려의 눈으로 바라본다. 일본 자위대의 작전영역이 전 세계로 넓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니다. ‘미·일 밀착’은 우리에게 득도 된다.

 그중 핵심은 일본 내 ‘핵 무장론’의 봉쇄. 미국이 일본에 완전한 ‘핵 억지력’을 제공하도록 다시금 못 박음으로써 일본이 핵과 관련해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했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일련의 ‘일본 우경화 시리즈’ 속에 핵 무장론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게 사실이다. 이를 ‘일단’ 봉쇄한 플러스 효과는 지대하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도 마찬가지다. 경계의 눈으로만 보지만 안전장치만 제대로 확보한다면 이는 우리에게 단연 득이다. 한반도 유사시 2시간 만에 비무장지대까지 날아올 수 있는 건 오키나와 주일미군이다. 1분 1초가 다급한 전시에 미군의 후방 지원을 일본이 맡아 주는 체제가 갖춰진다면 마다할 필요가 없다. 주판 두들겨 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 이야기다.

 역으로 우리가 눈을 더 크게 뜨고 감시해야 할 대목도 있다.

 흔히 우리는 아베가 일본 우경화의 핵이라고 몰아세우지만 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아베를 비롯한 관념주의자보다 아베를 둘러싼 초현실주의 관료들의 폭주가 더 무섭다. 이들의 관심사는 아베가 아니라 아베의 지지율이다.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동안 자신들이 염원하던 ‘자주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오히려 아베에게 “더 몰아치라”고 부추기고 있다. 뒤에 숨어 군사력 강화와 대륙에 눈을 돌리는 그들을 주시해야 한다.

 일본을 대할 때는 이처럼 혜안뿐 아니라 복안(複眼)이 필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외교 당국과 국민은 감정론적 외눈으로만 일본을 바라본다. 그러니 반쪽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익숙지 않겠지만 이제 나머지 한쪽 눈을 뜰 때다. 그게 우리가 살길이다.

김현기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