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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시조] 명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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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명창  - 김일연

죄는 다 내가 지마 너는 맘껏 날아라

진초록에 끼얹는

뻐꾸기

먹빛

소리

외딴집 낡은 들마루

무너져 앉은

늙은 아비

◆김일연

1955년 대구 출생. 80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조집 『빈들의 집』 『서역 가는 길』 『명창』 『엎드려 별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등 수상. 한국작가회의 시조분과 회장.

요즘 짧은 시에 대한 문단의 관심이 높다. 산문시의 퇴조는 이런 경향과 무관치 않다. 배경에는 영상 중심의 멀티미디어 시대가 자리한다. 젊은 세대들은 이미 문자보다는 영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익숙하다. 이는 보다 운문성이 강한 짧은 시라야 독자의 시선을 끌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시조는 미래시로서 새로운 문학적 위상과 자원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김일연은 짧은 시의 특징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응축과 균제미를 지닌 정형적 보법을 구사하는 대표적인 시인이다. ‘명창’은 정형의 절제 속에서 자유를 분출하는 그의 시적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별생각 없이 툭툭 던져놓은 듯한 활달한 보법 속에 숨겨진 시적 장치는 매우 치밀하다. ‘죄는 다 내가 지마’의 초장은 한국적 정한의 결정체로 빛난다. 중장과 종장은 그 배경일 뿐이다. ‘맘껏 날아라’로 하늘로 향한 시선은 뻐꾸기 소리로 하강하여 ‘외딴집 늙은 들마루’와 ‘늙은 아비’로 클로즈업되는 고도화된 기법을 보여준다. 피를 토하는 듯한 먹빛 뻐꾸기 울음 속에서 ‘늙은 아비’는 마침내 자연의 일부로 동화된다.

김일연의 시조는 이렇게 절제와 응축, 이미지의 분절과 새로운 리듬 창출로 특유 시세계를 조형해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한 경지를 드러내는 서정적 속살과 신선한 무늬의 층위를 만나게 된다. 권갑하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전 응모자격을 줍니다.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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