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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가술술] 글에 '영혼'을 불어넣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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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에세이 점수가 안 나오는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수년간 해외 생활을 하며 원어민같이 영어를 잘해 중학생 때부터 토플 만점을 받아온 특목고 2학년 J군(17). 학교 성적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모의 SAT 시험은 언제나 최상위권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SAT 시험방식이 바뀌어 에세이가 도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에세이가 대부분의 점수를 갉아먹으면서 2400점 만점 가운데 2100~2200점대가 나왔다. 이 정도도 웬만한 미국 명문대를 지원할 수 있는 성적이다. 하지만 앞으로 대학 지원 에세이를 작성해야 하는 J군은 에세이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상담 온 J군은 여러 곳에서 2년 동안 에세이 훈련을 받아왔다고 했다. J군의 에세이 작성 과정을 테스트했다. 탄탄한 문법과 화려한 어휘력 구사, 서론-본론-결론으로 이어지는 구조. 소위 영어 '기술'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점이 쉽게 발견됐다. 필자가 제시한 주제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순간을 써 보라"는 것이었고 J군은 "학교 성적이 떨어져서 부모님한테 혼났을 때"라고 썼다. 이 글을 읽는 학부모들께선 본인의 자녀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론 80% 이상이 이와 유사한 대답을 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성찰이나 미래에 대한 꿈, 인간관계 등에 대해선 언급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뜬 뒤 밤에 단어장을 낀 채 침대에 눕기까지, 주입식 입시 지옥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학생들의 인생은 모두 '성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들이 개인사를 넘어 시사 이슈나 사상적 현안에 대해 쓰는 글의 내용은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인류의 보편적 합리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글이 편파적인 내용에 그치거나 제대로 핵심을 찌르지 못해 헛발질하기 일쑤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충실한 모범생이라면 누구나 '생각 결핍증'에 감염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생각 결핍증' 학생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자신의 생각대로 쓰다 보면 글이 대단히 유치(childish)해진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돋보이게 하려다 보면 허세(pretentious)를 부리게 된다. 현학적인 한국 논술과 달리, 미국 글쓰기는 가식적인 것을 대단히 싫어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결국 자신의 생각만큼 쓸 수밖에 없고, 그것에 의해 잣대가 결정된다.

마치 살아있는 육체에 입시 머신을 장착한 '로보캅'과 같이 한국 학생들은 메마른 글을 양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글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TOEFL이든, SAT든, 대학지원 에세이든, 국내대학 국제학부/영어특기자 전형이든 마찬가지다. 평가자들은 보통 하루 평균 50~100편의 에세이를 심사한다. 한 전직 IVY리그 입학사정관은 사석에서 필자에게 "실제 에세이 평가가 얼마나 지루한 지 모른다(Boring)!"고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에세이를 평가하는 시간은 길어야 30초 안이다. 그만큼 첫 눈길에 호감이 가는 에세이는 문법적인 오류가 있더라도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필자도 여러 번 공식적인 에세이를 평가해본 경험에서 볼 때, 수북이 쌓여있는 에세이 가운데 끌리는 작품은 언제나 20%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그저 그런 평작이다.

성공적인 20%의 에세이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Rhetoric)'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로고스(논리력), 에토스(품성), 파토스(감성) 등 3대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머리로만 써서도, 마음으로만 써서도 읽는 상대방을 끌어들일 수 없다.

심도 있는 논리적 사고력,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따뜻한 마음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에세이만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에세이를 작성하기 위해선 문법, 어휘 등 영어 '기술'만으론 부족하다. 그 위에 진솔성(Sincerity), 주제성(Topicality), 구성(Organization), 화법(Storytelling), 객관성(Objectivity), 겸손(Humility), 구체성(Detail), 보편적 합리성(Rationality), 차별화(Differentiation), 통찰력(Intuition)과 같은 10가지 법칙에 익숙해져야 한다.

바람직한 영작문 방법으론 초기 단계에서부터 문장을 통째로 외우길 권한다. 언어는 논리가 아닌 관습이다. 아무리 문법을 마스터했다고 해도 고품격의 자연스러운 영작문에 도달할 수 없다. 여러 동의어 중에서도 반드시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하는 단어는 따로 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문학 작품보다는 인문 사회 교양서를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깊이 있는 사고력에 대한 과제들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해당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한다면 보다 깊이 있는 글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은 그 사람의 그림자다. 글 한 편만 읽어도 그 사람의 깊이를 알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생각의 깊이를 넓히지 않은 채 좋은 글이 나오길 기대할 수 없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부지런한 절차탁마(切磋琢磨)가 필요한 이유다. 글에 '영혼'을 불어넣자.

이세민 영타임스 교육이사 www.perfect-ess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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