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인의이것이논술이다] 적절한 예문은 글의 생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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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논제를 잘 파악했는지, 자신이 쓰는 글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지 가늠하는 잣대는 그가 들고 있는 사례다. 적절하고 좋은 사례는 논술의 생명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우선 제시된 자료를 해석하면서 적절한 사례와 연결시킬 수 있어야만 그 자료를 잘 파악했다고 할 수 있다. 대충 설렁설렁 글을 읽는 바람에 자료에 언급된 구체적 사례를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는 학생이 아주 많다. 이런 학생은 생각을 해가는 과정에서 깊이가 부족하고 공허한 논의를 하게 되기 십상이다.

2005학년도 서울대 논술 모의고사의 한 구절을 보자. "정교한 기계는 매우 비싸기 때문에 대량의 상품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거래되지 못한다. 그것은 상품의 판매가 적절하게 보장되고 기계에 투입할 원료가 중단 없이 공급될 수 있을 때에만 손실 없이 작동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교한 기계'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많은 학생이 별생각 없이 '시계'나 '자동차' 같은 예를 든다. 그러나 정답은 '공장 설비'다. 문맥을 놓친 채 부분만 확대해 파악한 결과다. 사례는 이처럼 독해력을 측정하는 중요한 근거다.

한편 자기 글을 논증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하거나 너무 막연한 예를 드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되면 읽는 사람으로서는 학생이 자신의 주장을 잘 이해하면서 글을 썼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개 글을 대충 읽는 학생이 글을 쓸 때도 예를 대충 드는 경향이 있다. 좋은 글이 나오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글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예를 드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이 과정에서 천편일률적인 예를 들기 쉽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보통 여기에 속한다. 이 경우 학생들은 마치 모두 함께 암기한 듯 똑같은 예를 떠올리곤 한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떠오르는 사례는 피하는 게 안전할 때가 많다.

학원에서 배워서 써먹는 예도 문제가 된다. 한 교수가 회고하기를, 논술 채점을 하는데 "'민들레 홀씨되어'라는 노래가 있어 민들레를 홀씨로 알고 있는데, 사실 민들레는 홀씨가 아니라 겹씨다"라는 문장이 있어, 그 참신함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한다. 그런데 채점을 계속하다 보니 비슷한 예가 반복되더라는 것이다. 결국 한 학원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써먹은 것임을 짐작하고, 허탈하고 분해서 모두 최하점수를 줬다고 한다.

참신한 예는 창의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런 예를 들 수 있으려면 평소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보는 습관을 익혀야 한다. 그래야만 적절한 맥락에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를 떠올릴 수 있다. 자기 눈높이에 맞는 독서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요약본을 읽는 것이 안 좋은데, 요약은 많은 예를 생략하기 때문이다. 좋은 예는 결국 학생의 직.간접 경험의 풍부함과 비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감동하는 경우는 나도 모르는 사실을 학생이 조목조목 예로 언급할 때다. 더 놀라운 것은 학교에서,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란다. 아, 요즘은 이런 것도 배우는구나 하면서도, 왜 다른 학생들은 이 예를 들지 않았을까 의아해진다. 감각의 차이, 사고력의 차이인가?

김재인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 논술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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