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인 안받고 北송금] 현대, 왜 法어기며 몰래 송금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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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 북한에 보낸 5억달러와 관련해 지난 3년간 통일부에 아무런 경제협력 승인 절차를 밟지 않은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대북 사업 차원의 송금이었다"는 현대와 지난 정부 관계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남북경협 차원이었다면 굳이 형사처벌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통일부에 사업 추진을 숨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가 관광.철도 등 대북 7대 사업 독점을 위해 돈을 보내야 했다면 먼저 통일부 교류협력국에 협력사업자 승인을 신청해야 한다.

교류협력국은 해당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 등을 검토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협력사업자 승인을 받으면 현대 측은 북한 측 상대방과 계약서나 협의서를 체결한 뒤 다시 통일부에 협력사업 승인을 신청한다. 여기서 통일부 승인이 떨어져야 북한에 돈을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현대가 산업은행에서 긴급 대출까지 받아가며 북한에 돈을 보낸 행태는 정상적인 남북 경협 투자의 과정에서 벗어났다.

물론 현대가 통일부의 승인을 얻어낼 자신이 없었거나, 남북 정상회담을 자신들의 사업에 이용하려 비밀 송금을 단독으로 기획한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엔 임동원(林東源) 전 국가정보원장이 송금에 적극 개입한 이유가 설명이 안된다.

한 통일부 관계자는 "林전원장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사람으로 누구보다 남북 경협 관련 법규를 잘 알 텐데 법까지 어겨가면서 현대 측의 경협 사업을 도와줬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林전원장은 송금 직전인 1999년 5~12월과 2001년 3~9월 두차례에 걸쳐 통일부 장관을 지냈으며 92~93년엔 통일원 차관을 거쳤다.

거기에 이근영(李瑾榮) 당시 산업은행 총재가 규정을 어겨가며 현대상선에 4천억원 대출을 허락했고 이기호(李起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현대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정황까지 고려하면 당시 정부가 현대의 대북 송금을 총력 지원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었음이 뚜렷해진다. 송금이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성을 띠었다는 의혹이 짙어지는 것이다.

특검 수사를 통해 현대의 대북 송금이 각종 실정법을 잇따라 어겨가며 이뤄진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현대 측은 물론, 당시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 문제가 현안이 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과 관련된 행위를 규제하는 법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과 국가보안법 등 두개"라며 "현대의 송금이 경협 자금이었다면 남북교류협력법상 처벌 대상이며 뇌물의 성격이었다면 국가보안법 적용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검팀 관계자도 "林전원장을 조만간 세번째로 소환할 방침"이라며 "현재 어떤 법률을 적용할지 검토 중"이라고 밝혀 사법처리 방침을 내비쳤다.

강주안.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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