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번영이 중공에 유리〃설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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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홍콩협상은 처음부터 중공의 페이스에 따라 진행됐고 결과도 대부분 중공카드대로 이루어졌다.
99년간의 조차조약자체가 기간만료 되는 데다 제국주의·직민주의 시대의 불평등 조약 이었기 때문에 영국으로서는 명분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지정학적으로도 영국이 중공과 끝까지 대결한다는 것은 무리다.
다만 영국이 갖고 있었던 카드는 중공 측이 무리하게 홍콩을 접수하려들 경우에는 5백50만 홍콩 주민들이 등을 돌릴 것이고 경제는 완전 파탄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결과로 중공의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의 하나인 대만통일에 반작용의 효과를 가자올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진행된 협상이었으므로 중공은 한쪽으로 9월30일까지 시한을 박아 강경 입장을 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 측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는 양 플레이를 해온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지속시켜 준다 (1국2체제), 현재의 법질서와 생활방식을 보장한다, 홍콩 자유항의 지위를 유지한다, 행정관리는 현지주민 자치제로 한다는 등 양국간 협상에서 타결된 주요 이슈들은 협상이 본격화하기 전인 작년 7월 북경을 방문한 홍콩 대학생 대표들에게 중공정부 고위층이 밝혔던 그대로다.
영국 측은 2년 전 홍콩문제가 처음 공식제기 되었을 때 홍콩의 특수사정, 즉 홍콩이 공산화하면 경제기능이 완전 마비돼 외화가 필요한 중공으로서도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현재 상태를 더 연장하는 방안, 또는 중공에 넘겨준 다음에도 어떤 형태로든 계속 관여하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중공의 태도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홍콩 주민들의 동요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협상에 임했다.
중공의 등소평이 지난 7월말 「하우」영국 외상을 융숭히 대접하면서「대처」수상을 영국의 「드골」이라고 추켜올린 것도 영국이 순순히 당초의 욕심을 버리고 차선의 길을 택한 때문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22차례의 협상을 거치면서 마지막 단계까지 난제로 남아있었던 이슈는 ▲토지임대권 및 매매 ▲영국정부 발행의 여권소지자에 대한 처리 ▲홍콩의 항공사 및 공항사용권 등 3가지였다.
홍콩의 토지는 원칙적으로 영국 국왕소유로 되어 있으며 그것을 개인 또는 기업에 임차해주고 있다.
다만 신계 지역의 경우는 일부 유력한 토호들의 사유권을 전통적으로 인정해왔다.
홍콩 정부는 근래 재정수입의 수단으로 토지임차권을 팔기도 하고 임차기간을 연장해 주는 조치를 취해왔다.
중공측은 영국이 홍콩을 되돌려 주기 전에 토지임차권을 전부 팔아먹고 그 돈을 빼돌릴 것을 우려했으나 이 문제는 특별자치구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과도적 조치로서 토지문제를 감찰하는 토지위원회 구성으로 낙착된 것 같다.
영국 정부 발행 여권 소지자에 대한 문제는 처음 영국은 이중 국적을 허용할 것을 요구했으나 주권 사항을 이유로 중공이 거부했다.
이 문제는 국적은 어디까지나 중국인으로 하되 나중에 홍콩자치구 정부발행의 여권으로 바꾸어 주든 가 아니면 영국 여권만은 그대로 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데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홍콩 공항사용권 문제는 중공의 국영항공 CAAC와 영국 스와이어(swire) 그룹 소유인 홍콩 CPA와의 대결로 압축된다.
중공 측이 홍콩을 접수하고 난 다음 CPA가 공항 이착륙하는데 일일이 제재를 받게 될 것을 우려해 영국 측이 이 문제를 제기했고 중공은 홍콩의 관광사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 어느 정도의 영업권을 허용하는 선에서 타결하지 않았나 관측된다. <런던=이제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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