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정신 팽개친 "폭력"|「국전대상표절」사건에 붙여… 유준상<미술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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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표절은 남의 것을 자기 것처럼 발표한다는 뜻이다. 남의 물건을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하는걸 도둑질이라고 한다. 도둑질한 남의 것은 장물이라고 부른다. 이 장물을 한국의 교수가 81년도 국전에 버젓이 내놓았고 대상까지 탔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저히 있을수 없는일』 이라는 물의가 일게 되었다. 81년도의 일이니까 3년만에 밝혀진게 되겠으며, 도대체 한국미술계는 그동안 무얼 꾸물거리고 있었느냐는 비난도 있다.
예술의 표절은 일반적인 도둑질하고는 그 성질이 다르다. 바로 물건을 훔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남의 집 담을 한밤에 넘어야하고 들키지 않게 창문을 따는 그 처절하고 긴박한 현실감이 여기에는 없다.
굳이 말한다면 눈에 보이잖고 손으로 잡을수 없는걸 훔치는게 예술의 이른바 표절이라는 것이어서 이 도둑질은 완전범죄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알리바이가 물증에 의해서 잡혀지는건 상대적인 경우에만 나타난다. 이번 사건이 바로 이러한 예며, 그것이 대상을 타지 않고 애당초 표절이었다는게 밝혀지고 심사과정에서 낙선되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물의는 일어나지 않는다. 표절이 어떤 범죄의식으로 간주되는건 예술의 질서에서보다 사회의 질서를 우선하려는 사회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술은 바로 우리들이 발견하고 창조했다고 말할수는 없다. 우리들 이전에 이사회에 그것이 미리 있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유아독존의 사람이라도 자신의 종교적 경제적 도덕적 예술적인 지식이나 신념을 바로 자기가 발견하고 개척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문명의 혜택을 현대의 사람은 태어나면서 사회로부터 공급받고 있으며 이 무상의 공유자산을 서로 평등하게 지키려는 심리가 우리 모두의 염원으로 되어있다. ,
이것은 누가 시켜서 그렇다는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인 귀납적 유발의 생명원리의 현상이라고 해야겠다. 미술은 개인의 독점물이 아니다. 미술 그 자체는 성공하지도 실패하지도 않으며, 돈을 벌고 지위를 얻는 것을 모른다. 다만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미술이 이렇게도 당하고 저렇게도 당한다. 작품이 성공하고 실패하는「사회성을 갖는 사실」에 관해서 「니체」는「폭력」이라고 갈파한바 있었다.
「노디에」 라는 사람은「책략」이라고 했으며, 「스탕달」은「연줄」이라고 했다. 선후배·동문·지연의「연줄」을 엮어 「책략」을 꾸미고 지위나 물건을 「폭럭」으로 응용해서「대상」하나쯤 차지하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것이 뭐가 그렇게 어려울게 있겠는가.
미술이 어떤 물의를 일으키는건 「실기실」속에선 나타나지 않으며, 작품이 그밖으로 반출되어 「전시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물의의 가능성을 나타나게 된다. 응모해온 모든 작품을 모두 전시할 수는 없으며 불가피하게 많은 부분이 낙선하게된다. 「전시」 는 이처럼 어떤 불가피성의 사회학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국미술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그「전시」의 역사는 30년정도밖에 경험한게 없다. 그래서 그「불가피」의 면역이 아직은 미숙하며 이번의 물의도 그 유년기현상을 드러내 보이고있다. 「사회성을 갖는 사실」로서의 미술에 관해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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