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그림/박창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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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7면

유난히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우리집 아이들은 견디기 어려운 더워속에서도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더위때문인지 요즈음 그리는 그림은 대부분 바닷속을 주제로 한것이어서 상어 문어 게 고기 조개등이 잘 꾸며진 수족관을 느끼게한다.
그 수면 위에는 엉뚱하게도 대포를 실은 커다란 배나 잠수함을 그리고 그옆에는 튜브를 몸에 끼고 수영을 하고있는 아빠·엄마, 그리고 3형제의 몸짓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 전쟁과 평화가 어우러진 아이를 그림에서만 볼수있는 천진함이 그대로 나타나는것이다.
어느 기성화가가 대포를 실은 배밑으로 고기들이 지나다니고 한가족이 평화롭게 수영하고 있는것을 이렇게 밝고 고운색으로 그릴수 있을것인가?
7살 막내가 『엄마, 친구 집에서 그림 두장 그렸어요』하며 보이는 스케치북에는 고운색깔로 정성껏 그린 2장의 그림이 있었다.
바탓속의 고기를 그린 그림과 또 한장의 그림은 방학중인 유치원이 생각나서인지 십자가가 높이 달려있는 교회 유치원과 이글거리는 태양, 창문이 커다란 집옆에 냉장고가 있고 아빠·엄마, 그리고 승용차가 있는 그림이었다.
냉장고는 왜 집밖에 나와 있느냐고 물었더니 너무 더워서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냥 길에서 냉장고를 열고 시원한것을 꺼내 먹는다는 것이었다.
높은 담도 없고 자물쇠도 없는 집. 냉장고가 길에 나와 있어도 좋은 그런 어린이들의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게하는 그런 그림이었다. <서울은평구갈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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