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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자 여사의 실종소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두환 대통령이 역사적인 일본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던 날인 8일 아침 동경에서는 뜻밖에도 이방자 여사의 행방불명사건이 터져 긴장해 있던 경찰과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여사의 아들 이구씨(52)가 새벽1시께 간다(신전)경찰서에 이여사의 행방불명 사실을 알리고 수색을 의뢰했다는 것.
이구씨가 경찰에 알려온 사건의 전말에 따르면 7일 아침 이여사가 묵고있는 동경YMCA 아시아 청소년센터에 전화를 걸어 이날 낮12시 제국호텔로비에서 모자가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시간이 넘도록 안나타난 것은 물론, 낮12시께 혼자 외출한 것은 확인되었으나 자정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제국호텔은 북한측이 자주 이용하는데다 조총련이 사무실까지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최근에는 한국대사관에서 조차 이용을 꺼리는 곳인만큼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전대통령의 방일시기와 연관시켜 불길한 예상을 하기도 했다.
경찰조사결과 이방자 여사가 행방을 감춘 것은 사실이나 처음 상상했던 것 같은 유괴나 납치사건은 아니고 본인이 스스로 「혼자 있고 싶어서」몸을 감춘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동시에 몸을 감추었던 원인이 아들 이구씨의 사생활과 관련이 있으며 이번 「행방불명 극」은 아들의 생활태도를 고치기 위한 충격요법의 일환이라는 추측도 있다.
전부인「줄리아」여사와 이혼한 이구씨가 일본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일반에게는 그리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금년 여름 일본의 유명한 사진주간인 포커스지가 이왕조의 후예인 이구 전전하께서 「아마데라스·오오미까미」(천조대신·일본황실의 조신)의 화신을 자칭하는 여자예언가 「아리따」(유전견자·48)라는 여성과, 동경 나가다쑈(영전정·정치중심지)의 호화맨션에 동거중이며 2천만엔을 사기했다는 혐의로 한국인 모 실업가로부터 피소됐다는 사실을 보도, 사생활에 문제가 있음을 짐작케 했다.
이때 포커스지는 이구씨가 비만한 여자와 함께 맨션에서 걸어나오는 큼직한 사진을 싣고 『남성쪽은 희고 고상한 얼굴에 말쑥한 양복으로 몸을 감싸 멋진 모습이었다. 한편 여성쪽은 역사도 부끄러워할 지나치게 훌륭한 체구의 소유자로 걷는 것도 어려울듯…』하고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을 꼬집었다.
포커스지에 따르면 「아리따」여사는 뛰어난 언변과 박력으로 시골부자들의 주머니에서 수백만 수천만엔씩 돈을 뜯어내고 있으며 이구씨는 79년 동거를 시작한 이래 이 여자의 권위를 높여주고 장사시중을 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사기범으로 몰리기까지 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포커스지에 소개된일 말고도 「덴엔죠오후」(전원조포)라는 동경교외 고급주택지의 부동산을 매각한 일로 이방자 여사가 속을 태웠다는 사실도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는 꽤 널리 알려져 화제가 된일이 있었다.
잘 알려진대로 이구씨는 이왕조 최후의 황태자인 이은공과 일본황실「나시모또노미야·모리마사」(이본궁수정)왕의 제1왕녀인 방자여사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이은공과 방자여사의 결혼이 일제의 한국합병을 위한 정략 강제결혼이었다고는 하나 그가 이왕가의 후손임에는 틀림없다. 몰락해 버리긴 했으나 한국을 통치하던 이왕가의 살아있는 얼굴이다.
천황제를 받들고있는 일본인들의 눈에 「남다른 한국인」으로 비칠 것은 틀림없다.
그런 그가 일본땅에서 이런저런 추태를 부리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괜찮은 것인지 안타깝다.
83세의 고령에다 신병까지 있는 이방자 여사가 오죽하면 행방을 감추었겠는지 동정이 간다.
이구씨는 한사람의 자연인으로 그 사생활이 존중돼야한다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가 왕가의 후손이라는 이유 때문에 남다른 주목을 받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최소한 나라와 국민의 체면을 깎는 일만은 삼가 주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
우리정부도 형식논리에 얽매여 해외에서 방황하는 그를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가 왕가의 후예다운 생활을 할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좋은 의미의 보호 감독을 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일 신시대, 성숙한 동반자관계라는 말이 쉽게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나 진정한 신시대, 당당한 동반자관계가 이루어지려면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스스로의 몸가짐부터 부끄럼이 없도록 단속해야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동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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