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죽게 한 모정 기소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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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 가능성이 없이 아픔만 견디며 연명하는 아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의 죽음을 도와준 어머니를 기소할 수 없다." 2일 프랑스의 제랄 르지뉴 검사는 2003년 식물인간으로 지내던 아들 뱅상 욍베르의 죽음을 도와준 어머니에 대한 재판에서 피고(어머니)에 대해 기소 면제를 요청했다. 르지뉴 검사는 어머니를 도와 뱅상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의사도 면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아직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지만 현지 언론들은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검사에 의해 받아들여진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르지뉴 검사는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특수성이 인정된다"며 "욍베르의 어머니와 의사가 취한 행동은 (살인 행위로) 여전히 금지된 것이지만, 그들이 경험했던 정신적 압박을 감안하면 기소면제가 타당하다"고 말했다. 욍베르의 어머니를 도와 그에게 독극물을 주사한 마취 전문의 프레데릭 쇼수아는 검사의 기소면제 결정이 내려진 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그동안 너무나도 먼길을 걸어 왔다. 법원의 기소면제 결정 수용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욍베르 사건=소방관이었던 그는 2000년 9월(당시 22세) 교통사고를 당해 사지 마비와 함께 장님이 됐다. 그는 의식은 남아 있었지만 병세가 호전되지 않고 극심한 고통만 계속되자 2002년 11월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간청했다. 2003년 9월 21일 그의 어머니는 방송에 출연해 "아들의 죽음을 도와줄 것"이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사흘 뒤 어머니는 아들에게 의식을 잃게 하는 주사를 놓았다.

혼수상태에 빠진 욍베르는 마취의사에게 넘겨졌으며, 의사는 가족의 동의 아래 그의 인공호흡기를 떼고 심장박동을 정지시키는 약물을 주사했다. 이 행위로 의사는 종신형까지 받을 수 있는 '고의적 살인' 혐의로 조사받아 왔다. 어머니 역시 최고 5년형까지 받을 수 있는 독극물 투약 혐의로 입건됐다. 이후 어머니는 자신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과 투쟁에 나섰다.

이 사건은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지며 존엄사 논쟁을 촉발시켰다. 논쟁은 의회로 번져 2005년 4월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인생의 마지막에 관한 법률'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프랑스는 아직도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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