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 순간, 통제관·조교 다 도망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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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은 14일 서울 내곡동 예비군훈련장 총기난사 사건이 최모(23)씨의 계획적 범행이었다고 밝혔다.

 육군 중앙수사단장 이태명 대령은 이날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최 씨가 올해 3∼5월 친구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10여 차례 보냈다”고 말했다.

 중수단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달 22일 초·중학교 동창인 친구 김모씨에게 “5월 12일에 나는 저세상 사람이야, 안녕”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5월 12일은 최씨가 예비군 동원훈련에 입소한 날이며, 총기난사 사건은 13일 발생했다. 지난 5일엔 역시 김씨에게 “예비군이야, 실탄 사격하는 날 말하지 않아도 예상”이라는 문자도 보냈다.

 최씨는 사격 훈련을 앞두곤 동료 예비군들을 쏘기 쉬운 장소인 맨 왼쪽의 1사로(射路·사격장소)에 있겠다고 자청해 결국 1사로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역시 최씨의 계획적 범행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중수단은 설명했다. 최씨는 ‘엎드려 쏴’ 자세로 사격을 하는 사격장에서 혼자 ‘앉아 쏴’ 자세를 취하는 등 이상 행동을 했지만 아무도 그의 범행을 예방하지 못했다.

 최씨의 총기난사는 13일 오전 10시37분부터 10여 초 동안 이뤄졌다. 그는 총기를 사격대에 고정하는 안전고리도 걸지 않았지만 사격장 조교들은 안전고리 고정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엎드려 쏴 자세에서 몸을 일으키면 곧바로 조교가 제압하게 돼 있는 수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수사단 관계자는 “최씨가 피해자들의 얼굴을 향해 조준사격을 해 4명의 사상자 모두 얼굴에 관통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2012년 1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한 최씨는 군 복무 당시 20발을 쏘면 모두 표적에 명중시켰을 만큼 사격 성적이 좋아 관심병사 등급이 B에서 C로 낮춰졌다고 중수단은 설명했다.

 난사 당시 현장을 통제해야 하는 통제관(대위)과 조교들은 모두 대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예비군 사격용 탄알은 9발을 지급하도록 예비군 교육훈련에 관한 훈령에 규정돼 있지만 이 부대는 10발을 지급하는 등 훈련장 운영이 총체적으로 부실한 상태였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박모(24)씨의 아버지는 본지에 “여러 명을 쏠 동안 아무 조치를 하지 않은 군에 반드시 문제 제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도 이날 “총알을 다 쏴서 떨어질 때까지 군이 가만 있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무대응을 비판했다.

 국방부는 그간 현역병 숫자가 줄어들자 예비군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 예비군 훈련의 강도를 높여왔다. 그러나 최씨처럼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관심병사로 분류됐던 예비역의 관리는 무방비에 가까운 상황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1993년 현역입영률은 신체검사 대상자의 71%였지만 2013년엔 91%로 늘었다”며 “군내 사고의 위험성이 예비군 훈련장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용수·김나한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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