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 군기 세게 잡으면서, 정작 사격 땐 설렁설렁 진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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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이 편하다는 건 옛말이에요. 요즘 훈련장에선 예비군에게 ‘주머니에 손 넣지 말아라, 줄 맞춰서 걸어라’ 사소한 부분까지 무섭게 군기를 잡아요. 그런데 사격 훈련은 현역병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설렁설렁 진행돼 놀랐습니다.”

 4년 전 육군 병장 만기제대를 한 민모(30)씨는 올해 들어 예비군 훈련이 부쩍 힘들어졌다고 느낀다. 최근 군의 예비군 전력 강화 방침과 맞물려 훈련 강도나 태도 지적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안전수칙도 듣지 못한 채 진행된 사격 훈련을 마치고 난 뒤엔 실망만 남았다. 민씨는 “결국 안전보다는 예비군에 대한 군기 잡기가 우선인 것 같다는 생각에 씁쓸했다”고 말했다.

 일선 예비군 훈련장이 안전사고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소 시간 준수나 예비군 복장 등은 과거보다 훨씬 강력하게 통제하면서도 정작 사고 위험이 있는 사격, 모의수류탄 투척 훈련 등은 허술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재 훈련 대상인 예비군들은 지난 13일 서초구 내곡동 예비군 동원훈련장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고가 “어느 훈련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참사였다”고 입을 모았다. 공군 방공포 특기병 출신으로 올 2월 경기도의 한 예비군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은 이모(27)씨는 “10초만 늦게 도착해도 입소를 못하게 막거나 고무링·전투복장 등은 귀찮을 만큼 세세하게 지적하면서도 정작 실탄이 지급되는 사격 훈련에선 철저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격 훈련이나 모의수류탄 투척 훈련 시 철저한 사전 교육이나 안전사고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공군교육사령부 출신 김태윤(28)씨는 “사격 훈련을 하다 보면 총기에 실탄이 걸릴 때가 있다. 잘못 다루면 오발사고까지 날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상황”이라며 “조교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해결하라고 해 예비군이 실탄을 넣었다 뺐다 하는 장면을 수차례 목격했다”고 말했다. 육군훈련소 화기학 조교 출신인 김령표(29)씨는 “지난 4월 입소한 예비군 훈련장에선 사격 훈련 시 3~4개 사로를 일병 계급의 조교 혼자서 통제하고 있었다. 사격 전 총기 고정장치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하는 교관은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육군군수사령부 학사장교 출신인 라현철(28)씨는 “모의수류탄도 파편이 터지기 때문에 사람한테 직접 겨냥하면 크게 다칠 수 있어 위험하다. 그런데 예비군 5명이 동시에 수류탄을 던지는 상황에서도 조교가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기만 하는 등 통제가 허술했다”고 지적했다.

 총기를 제대로 다뤄 본 적이 없는 일부 예비군에 대한 관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육군 A포병부대 행정병 출신인 김모(30)씨는 “행정병 출신이라 훈련소 이후 총기를 자주 만져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예비군 훈련장에서 나 같은 사람에 대한 사전 조사나 교육도 없이 서둘러 사격 훈련을 진행해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예비군 훈련 시 안전사고 예방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사격 훈련 시 예비군에게 숙련된 조교를 한 명씩 의무적으로 배치하고, 탈착이 어려운 총기 고정장치를 설치하는 등 예비군 훈련 매뉴얼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국희·김민관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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