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까소네 수상의 한국기자단 회견|넘어야 할 벽 아직도 많다|최우석 <부국장겸 경제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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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의 국가원수로서 첫 일본 공식 방문임을 강조한다.
김포공항을 뜬지 2시간만에 동경에 도착했는데 마침 교통체증에 걸려 비행장에서 시내까지 들어오는데 역시 2시간이 걸렸다.
한국과 일본간은 이토록 가까운 거리지만 국가원수의 방일은 유사이래 처음이란다. 미국과는 정상회담을 14번 가졌다. 가깝고도 만 나라라는 것이 새삼 실감된다.
「나까소네」(중증근강홍) 수상은 2천년 이상에 걸친 양국교류사상 대서특필할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서울 외무부관계자도 같은 것을 강조했는데 이번 9월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이 상징적 와의를 갖는다는데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나까소네」 수상이 한국을 방문하고 그 답례로 전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수 있게 된 분위기 자체를 무척 소중히 생각하는 것 같다.
모처럼 좋은 무드가 고조될 때 매듭지을 것은 매듭짓고 다질 것은 다지자는 조바심이 배어 나오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 한일관계로서 언제 풍향이 바뀔지 알 수 없으므로 무르익은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일간엔 복잡한 과거가 있어 백지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과거의 응어리가 깔려 있어 감정적이 되기 쉽다. 최근까지 항한공사를 지낸 후등 외무성 아시아국장도 『방두서 파동 때 많은 것을 배웠다. 일본은 과거의 역사를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해야할 것」이라고 함축성 있는 말을 했다.
「일한 신시대」란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이월된 불편한 관계에 어떻든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다는 뜻인 것 같다.
「나까소네」 수상은 22일 하오 2시30분부터 40분 동안 예정된 한인 기자들과의 회견을 1시간20분을 연장하면서 많은 질문에 대해 상세한 답변을 했다. TV조명이 밝게 비치는 가운데 원탁형으로 둘러앉아 회견을 했는데 「나까소네」 수상은 많은 준비를 한 듯 대화식으르 응답을 했다.
숫자를 대강만 인용하고 메모도 없었다. 21일 저녁 NHK-TV에서도 평론가 초류씨와 가벼운 차림으로 나와 여러 문제에 대해 방담을 하면서 전대통령의 방일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했다.
회담 전 일본 외무성관계자는 「나까소네」 수상의 스케줄이 워낙 타이트하여 예정시간이 다 되면 뒷 질문은 끊길 수가 있으니 짧게 질문을 해달라고 요청까지 했는데 시간을 40분이나 연장하자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나까소네」 수상은 회견이 끝날 때도 다시 이번 전대통령 방일의 의의를 강조하고 매스컴에서 그 뜻을 한국 국민들에게도 잘 전해달라고 말했다.
무드 조성에도 무척 신경을 섰다. 옛날 일본이 백제의 왕인박사로부터 한문을 전수받은 것을 비롯해 과거 일본문화가 한국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는 것, 수상이 된 후 가장 먼저 한국엘 갔는데 그것이 자신의 외교우선가라는 것, 한국은 지금 국운개화기를 맞고 있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많이 딴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치열한 선거경쟁을 거쳐 정상까지 오른 노련함이 잘 나타났다. 회견도중 짧은 단어지만 한국말을 많이 섞어 썼다.
한국말을 애써 쓰려고 하는 것은 이번 특히 두드러졌다.
떠나기 전날 서울서 주한 일본공사가 사전설명을 할 때 더듬거리면서 한국말로 했다. 21일 저녁 수평 관방부장관이 인사말을 하면서도 백제를 한번 추켜세우고는 한국말로 끝을 맺었다. 후등 아시아국장도 마찬가지. 아래위가 무드조성에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문제에 들어가면 냉정하다. 평행선의 논리가 되풀이된다.
「나까소네」 수상은 새로운 한일관계를 강조하면서도 오랜 현안인 무역불균형 시정문제에 대해선 가볍게 넘어갔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가면 잘될 것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한창 성장을 했던 50년대엔 자본재와 원료의 수입이 많아 무역적자가 많이 났는데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균형으로 접근해갔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일본에서 거의 모범답안이 되다시피 한 것으로 좀더 솔직한 사람은 한국의 대일 적자가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느냐고 까지 말한다.
재일 한국인 처우나 사할린 교포문제도 마찬가지. 서로 생각하는 바탕과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에 끝없는 평행선과 벽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한일간엔 뚝 부러지게 해결 지을 수 있는 현안이 없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무슨 상징이 있어야 하는데 불편한 과거를 어떻게 매듭지어 기록해두느냐가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나까소네」 수상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깊은 반성을 강하게 표명했다.
23일 아사히(조일)신문은 이를 1면 톱으로 자세히 보도했다. 과거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간 사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선 천황이 그걸 표명해야 한결 무게가 가중된다. 천황은 실권은 없지만 일본의 상징적 존재로서 전통적으로 갖는 무게는 대단하다.
따라서 천황이 어느 정도의 유감을 표명하느냐는 양국의 국내사정과도 관련된 미묘한 문제로서 한일 신시대에 대한 일본의 성의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한일간의 좋은 무드는 한창 고양되어 있으나 넘어야할 벽은 여전히 높은 것이다. 분위기에 취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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