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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출판계 사재기 파문 또 번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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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태는 12월 마지막 주 국내 온.오프라인 대형 서점들이 베스트셀러를 공개하면서 불거졌다. 교보문고.영풍문고.서울문고.예스24.인터파크.알라딘.리브로 7개 서점에서 매주 발표하는 베스트셀러에서 전 주까지 목록에 들어있던 5종의 책이 갑자기 사라졌다. 해당 도서는 '쏘주 한 잔 합시다'(큰나), '세계명화 비밀'(생각의나무), '위트 상식사전'(보누스), '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밝은세상), '오 메시아 NO'(아루이프로덕션)로 알려졌다.

이들 책이 베스트셀러에서 빠진 것은 단행본 출판사들의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와 주요 서점들의 합의 아래 이뤄졌다. 출판인회의가 지난 연말 각 서점에 해당 도서들을 베스트셀러에서 빼줄 것을 요청했고, 서점들이 이를 수용한 것. 출판인회의 관계자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서점 판매현황, 현장 조사 등을 걸쳐 사재기 혐의가 유력한 책들을 찾아냈고, 관련 출판사도 이에 수긍했다"며 "일단 법적 대응보다 베스트셀러에서 문제가 된 책을 빼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출판인회의는 사재기로 지목한 책과 출판사들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출판계 자정 차원에서 일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업계의 반성을 촉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장이 커지면서 관련 출판사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큰나출판사 최명애 대표는 출판인회의의 자료 공개를 요구했다. "사재기를 한 적이 없다, 출판인회의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생각의나무 박광성 대표도 "윤리적으로 지탄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반박했다.

안타까운 건 이번 논란이 출판계 전반의 '고질'이 도진 데 있다. 출판계는 1997년, 2001년에도 사재기 파동으로 홍역을 앓았었다. 한 출판사 대표는 "한국의 많은 출판사는 사재기에서 떳떳할 수 없다. 때론 서점에서 이를 권유하곤 한다"고까지 말했다.

또 다른 대표는 "누군가 솔직히 '제가 잘못했습니다'며 사과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문화의 지킴이인 출판계가 '지적 사기'를 반복해선 곤란하다는 것. "사재기를 한다고 안 나갈 책이 팔리는 건 아니다. 어차피 승부는 기획에서 갈라진다"는 그의 말이 '공자님 훈수'가 아닌 '실천적 윤리'로 자리 잡는 2006년이 되길 바랄 뿐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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