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하는 투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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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생은 투쟁하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의 말이다.
스포츠가 아름다운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투지 없는 스포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이기고 지는 것은 순간의 결과일 뿐, 그 결과에 이르는 투지의 드라머야말로 스포츠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A올림픽 하프헤비급(95kg이하) 유도경기에서 우리나라 하형주선수가 보여준 게임은 바로 투지의 드라머였다.
하선수는 일본선수와 3회전을 벌이며 마치 쥐를 잡으려는 고양이모양으로 기회를 엿보는 일본선수를 쉴새 없이 공격했다. 하선수는 잠시 팔이 비틀린 상태로 고통스러운 공격을 받았다.
그 공격에 대한 하선수의 보답은 상대 선수를 번쩍 들어 통나무를 던지듯 들어 메치는 것이었다.
4회전 서독선수와의 대결, 브라질선수와의 결승전은 1초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 긴박감의 연속이었다. 특히 서독선수는 관록이 번쩍이는 역전의 영웅이었다. 하선수는 철벽같은 공세에 밀러 잠시 어두운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투지. 어깨가 고통스러운 듯 부자연스러운 제스처를 보여 주면서도 그는 맹수처럼 덤벼들었다.'하선수의 승리는 바로 그 투지의 승리였다. 아마 그가 패했어도 세계의 관중들은 그에게 더 많은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이겼다.
시상대 위에 우뚝 선 그의 모습 또한 투지, 그대로 였다.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울기보다는 두 팔을 들어 마음껏 웃었다. 파안대소. 그 얼마나 아름답고 장쾌한 장면인가.
그는 웃어야할 때 눈물을 흘리는 피에로가 아니었다. 세련되고, 늠름하고, 심강한 승리자의 모습. 흡사 살아 있는 동상 같았다.
『세계의 넓은 전양에서/또한 인생의 야영에서/목매인 송아지처럼 좇기지 말고/투쟁하는 영웅이 되라』
「헨리·워즈워드·롱펠로」의 시 한 구절이다.
한시절 세계 무패의 복서였던 「무하마드·알리」의 만년 게임들이 생각난다. 챔피언과 돈에 집착해 링 위에서 뒷걸음질만 치던 그는 때때로 챔괴언 타이틀을 지키기도 했지만 세계의 관중들은 그에게 박수대신 야유를 퍼부었다. 어디로 보나 그는 투사가 아니었다. 승부를 가리는 한낱 술사에 지나지 않았나. 그는 초년 챔피언 시절의 그 명성을 잃고 목매인 송아지처럼 링을 떠났다.
우리는 하선수의 금메달보다는 그의 밀물 같이 몰아치는 그 투지와 투혼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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