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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친구를 지켜주는 ‘일진’ 본 적 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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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0일 부산시 남구 대연동 윤형빈 소극장에서 개그맨 윤형빈(왼쪽)·김영민씨가 “학교폭력 안돼요”라며 두 팔로 X자 표시를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6일 오후 부산시 남구 대연동 윤형빈 소극장. 부산 항만물류고등학교 학생 1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공연 제목은 ‘친구야 놀자’.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개그맨 윤형빈(35)·김영민(34)씨가 부산경찰청과 함께 마련한 공연이다. ‘왕비호’로 알려진 윤씨는 이종격투기 선수로 변신해 더욱 유명해졌고 김씨는 KBS 개그콘서트에서 ‘국민 내시’로 인기를 모았다.

 공연 내내 학생들의 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학교의 ‘일진’이 약한 친구를 지켜준다는 내용의 1시간30분짜리 공연을 코믹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불량스러운 일진이 등장할 때는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오히려 약한 친구를 보호하며 친밀하게 접근하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윤씨는 무대에서 이런 말을 던졌다. “친구들을 때리고 괴롭히는 건 정말 못난 짓이죠.” 이날 공연에는 윤씨의 후배 개그맨들을 비롯해 권기선 부산경찰청장과 학교폭력 담당 이재영 경장 등 8명이 직접 출연했다. 권 청장은 무대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번개맨’으로 무대에 오른 이 경장은 “경찰이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연을 관람한 박현수(18)군도 “학교폭력을 코믹하게 그려내 오히려 더 공감이 갔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 같은 무료 공연 아이디어는 두 개그맨이 먼저 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개그를 통해 일깨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후 부산경찰청에 도움을 청한 뒤 학교폭력 전담 경찰과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대본을 짰다.

 소극장 공동대표인 윤씨와 김씨의 학창 시절은 사뭇 달랐다. 윤씨는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지켜주기 위해 가해 학생들과 종종 싸웠다고 한다. 그는 “몸이 약한 친구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걸 마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학교폭력 피해자였다. 그는 “아버지 직장 관계로 초등학교 때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괴롭힘을 당했다”며 “그 때문인지 지금도 불량스러워 보이는 학생들이 골목길에 모여 있으면 나도 모르게 피해 다닌다”고 했다.

 ‘친구야 놀자’는 이번 첫 공연을 시작으로 부산 지역 19개 초·중·고교 학생들에게도 선보일 예정이다. 반응도 좋은 편이다. 김씨는 “학교폭력에 고민이 많은 선생님들의 문의전화가 많다”고 소개했다. 윤씨는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주입식이 아니라 개그를 통해 ‘학교폭력은 나쁜 것’이란 생각을 자연스레 심어주고 싶었다”며 “학교폭력 전담 교사와 학생도 무대에 올려 보다 친숙한 공연이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17일엔 청각장애인을 위한 공연도 준비 중이다. 김씨는 이를 위해 지난 4년간 수화를 익혔다. 김씨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수화 없이 개그를 선보였다가 냉담한 반응을 얻은 적이 있다”며 “이들을 위해 눈으로 즐기는 개그 공연을 선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그 공연을 통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과 흡연의 심각성도 알릴 계획이다. 이들은 “요즘 청소년들은 온라인 공간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며 “밖으로 나와 친구들과 공연도 즐기고 함께 웃으며 문제를 해결해 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윤씨와 김씨는 서울에 집중된 소극장 문화를 부산에도 확산시키려는 취지로 2012년 10월 윤형빈 소극장을 열었다. 앞으로 소외계층을 위한 공연장 무료 개방도 계획 중이다. ‘웃음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부산=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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