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버드는 내 친구” 소년은 눈 감기 전 미소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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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스피니는 46년째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캐릭터 빅버드를 연기하고 있다. 새 모형 안에 그가 있다. [뉴욕 AP=뉴시스]

‘빅버드(Big Bird)가 우리를 울렸다.’

 미국 CNN방송이 8일(현지시간) 소개한 감동 실화다. 빅버드는 1969년 미 공영방송 PBS에서 선보인 ‘세서미 스트리트’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노란색 카나리아로 알파벳송을 즐겨 부른다. 이름에 걸맞게 키가 2.5m에 달한다. 거대한 인형에 숨결을 불어 넣는 사람은 올해 82살의 캐롤 스피니다.

 CNN에 따르면 스피니는 7일 소셜미디어 커뮤니티 레딧에서 게시판 채팅을 통해 사용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AMA)’ 세션에서 어린이와 함께한 가장 의미 있는 시간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스피니는 “매우 슬픈 실화가 있다”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빅버드의 팬인 다섯 살 조이는 암 투병 중이었다. 투병 생활 중 유일한 행복은 TV로 빅버드를 만나는 것이었다. 매일 빅버드를 보고 싶었지만 모든 쇼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조이는 용기를 내 빅버드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에게 전화를 한 통 걸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좋은 어린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했다. ‘어린이의 희망’ 빅버드로 살아온 스피니가 조이의 부탁을 거절할 리 없었다. 전화 통화는 이뤄졌고 조이는 매우 아픈 상태에서도 10여 분간 빅버드와 이야기했다.

캐롤 스피니

 전화를 끊고 나서 조이는 부모에게 “빅버드랑 얘기했어요. 그는 제 친구에요”라며 기뻐했다. 그리곤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세상과 작별했다. 조이의 입가에는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스피니는 조이의 죽음을 그의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통해 알게 됐다. 조이의 아버지는 “지난 몇 달간 아들이 그렇게 웃는 것을 본 적 없다”며 스피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스피니는 첫 회부터 지금까지 46년간 빅버드를 연기했다. 새 모형 안에서 오른쪽 팔을 들고 손을 움직여 입 모양을 만들고, 왼쪽 팔을 휘저으면서 빅버드의 양팔을 움직인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빅버드로 살았다. 네 차례 에미상과 두 차례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워낙 영향력이 크다 보니 2012년 미 대선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밋 롬니 공화당 후보 진영이 공영방송의 정부 지원 논란과 관련, 빅버드를 소재로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그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엠 빅버드: 더 캐롤 스피니 스토리’가 개봉됐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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