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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나의 둥지 하노버 … 겨울이 참 긴 이 곳에 봄이 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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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의 아파트에서 내다 본 하노버 거리풍경. 니더작센의 주도로 북위 52도상에 위치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하노버에 드디어 봄이 왔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길거리에 몇몇 사람들이 파커를 입고 다녔다. 지금은 몇몇이 반팔 티셔츠만 입고 자전거를 탄다. 시도 때도 없이 오던 비 대신 거의 매일 해가 뜬다. 그래선지 한낮까지도 새들이 쉬지 않고 지저귄다. 나무들도 다시 활기를 찾은 듯 보인다. 슈만이 하이네의 시를 음악으로 재탄생시킨 ‘시인의 사랑.’ 그 중 첫 곡 ‘황홀한 5월에’의 첫 여덟 마디의 가사는 이렇다. “황홀한 5월에, 모든 싹이 피어남에. 모든 새가 지저귐에.” 지금 여기의 풍경이 꼭 이와 같다.

사실 이 봄이 이토록 감격스러운 이유는 단 하나, 겨울이 길어서다. 이 곳의 겨울은 참 길다. 해가 빨리 져서 더욱 그렇다. 낮 네시를 넘기면 이미 캄캄해지기 시작해 다섯시면 밤이다. 캄캄해지기 시작했다는 것도 실은 크게 맞지 않는 표현이다. 환할 때가 애초에 없으니까. 언제든 비가 올 준비가 되어있는 하늘엔 해도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

언젠가는 일주일째 해를 못 본 적도 있다. 쟤 정말 죽은 거 아니야, 싶었을 정도로.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은 자욱한 안개가 드리운 듯한 1, 2, 3악장이 30분 넘게 계속된다. 마침내 마지막 악장에 이르면, 그것도 도입부를 한참 지나서야 환희의 노래가 등장한다. 딱 그 기분이다. 일주일 만에 해가 뜨면. 실은 좀 찔릴 때도 많다. 신문사에서 지어 주신 내 칼럼 꼭지 이름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가 말이다. 사실 하노버에 사는 내 친구들이 알면 웃을만한 제목이다. “너가 하노버에 있기는 해?” 맞다. 연주 여행이 길어질 때엔 몇달씩 집에 못 오기도 한다.

한번은 일곱달 동안 못 온 적도 있다. 지난 반년동안만 봐도, 절반의 편지는 시카고에서, 비엔나에서, 서울에서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이 제목을 고수하고 있다. 이 도시를 많이 좋아해서다. 따지고 보면 9년 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2006년 처음 이 도시에 올 땐 정말이지 도살장 가는 소의 기분이었다. 물론 누가 나를 억지로 끌고 온 것도 아니었다.

손열음의 하노버음대 스승 아리에 바르디(78).

지금 배우고 있는 아리에 바르디 선생님께 꼭 배우고 싶어 스스로 결심한 것이긴 한데, 당시의 나는 딱 4년 먹은 서울 물에 정신 못 차리던 스무살. 한참 신나게 놀다 베를린도 뮌헨도 아닌 이런 시골 구석에 들어와 살아야 한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입학 시험을 보러 6월에 잠깐 들른 이 곳. 적어도 내가 본 도시의 일부분들은 정말이지 손바닥만했다.

안 그래도 예술의 전당 한켠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캠퍼스의 로망을 다 포기하고 살았는데 그보다 조금 클까 싶은 음악대학에, 고작 10분만 걸으면 나오는 기차역. 독일의 여느 다른 도시들처럼 기차역을 끼고 조성된 시내는 원주 시내보다도 더 작아보였다. 이런 곳에서 무슨 재미로 살지? 게다가 내가 구한 학교 바로 맞은편의 집은 0층부터 시작하는 독일식 건물의 5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 없는 집에 산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가던 때의 그 기쁨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데. 이제 와서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하다니. 집 안도 싫었다.

울퉁불퉁해서 벽지를 바를 수도 없는 벽에 사람 사는 집에는 쓰면 안 될 것만 같은 카페트. 왜 내가 이런 곳에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날, 창밖을 내려다보며 슈베르트 리트를 듣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이 음악이 이 곳 풍경과 참 닮은 음악이었구나, 하는 생각. 더없이 예쁘지만 슈베르트의 음악은 실은 미사여구의 음악이 아니다. 그건 서울에서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런 한적한 공간에 오니 뭔가 달랐다. 마치 재료 본연의 담백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향신료들이 싹 물러나준 느낌? 화려함이 없어 처음부터 입맛을 사로잡진 않지만 조금씩 씹을수록 계속 아기자기한 감칠맛들이 나는 그런 음악. 이 곳과 꽤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턴가는 서울을, 도쿄를, 뉴욕을, 모스크바를 다니다 집에 돌아오면 이 작은 도시가 참 아늑하게 느껴졌다.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음악을 들을 때는 생활인 손열음 말고 자연인 손열음이 되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밑에 소소하게 진행되는 일상의 풍경을 보며 슈만의 음악을 들을 땐, 짙은 향취의 유화같은 겉모습에 감춰진 소박한 그 음악의 재료들이 함께 들렸고,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드라마틱한 하늘을 바라보며 리스트의 음악을 듣노라면, 화려함 뒤에 숨어있던 그 음악의 서정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불편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겉모습을 걷어내면 꽤나 살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대도시가 그리우면 가까운 베를린이나 함부르크에 가면 되고 다른 도시로의 이동도 편하다. 아파트 6층 높이를 허구헌날 20kg짜리 캐리어를 짊어지고 올라다니는 건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래도 8년동안 직접 바닥을 다시 깔고, 벽을 칠하고, 가구를 하나하나 만들어 완성시킨 집은 어느덧 내 마음 속 진짜 집이 됐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하노버의 음악편지’ 덕에 당분간은 다른 곳으로 이사도 못 가겠다.

손열음

알림:손열음씨가 이 란에 쓴 글을 모은 책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가 20일 출간됩니다. 출간기념 작은 음악회가 27,28일 19시30분 서울 한남동 일신홀에서 열립니다.(02 3015-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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