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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부터 시작 … 노동 개혁 칼 뺀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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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노동 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된 지 한 달 만에 정부가 주도하는 개혁이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노동개혁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한 지 3일 만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7일 “더 이상 노동개혁을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달부터 임금피크제를 포함한 임금체계 개편을 시작으로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부터 수립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이날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발표하고, 이 장관이 직접 전문가와 30대 기업 인사담당최고책임자(CHO)와 잇따라 간담회를 열었다. 공공부문이 선도하면서 대기업의 동참을 이끌어내 개혁 정책을 안착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임금피크제 권고안’은 316개 모든 공공기관에 내년부터 적용된다. 이를 통해 절감되는 인건비로 2년간 8000명의 청년을 신규채용 하기로 했다. 정부는 공공기관들이 이렇게 청년층을 뽑아야만 연간 1만7000명 수준의 신규 채용인원이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56개 기관만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들 기관도 정부가 제시한 새 기준에 맞춰야 한다. 정부 권고안은 현재 정년이 60세 이상인 곳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토록 했다. 임금피크제를 이유로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늘리는 것은 금지된다. 기존 정년이 60세면 이를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임금피크 대상자가 부서장 직무를 수행하면 직무급 등을 통해 임금을 더 줄 수 있도록 했다. 직무와 직위에 따라 임금지급률은 차등 적용할 수 있다. 기재부는 57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면 3년간 평균 20% 정도 임금이 삭감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기재부의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권고안은 민간기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고용부 고위관계자는 “일부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는 기업이 많다”며 “정부 권고안은 이들 기업에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6일 노사정위 공익위원을 포함, 학계 전문가 11명과 ‘노동시장 구조개선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엔 고용부 내 관련 실·국장이 모두 참석했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노사정 간 공감대를 형성한 부분 중 일부만 제대로 이행해도 그 파급력은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5~6월에 임금피크제와 임금체계 개편에 집중하면서 공공부문부터 선도하겠다”고 했다.

 7일 30대 기업 CHO와의 간담회에서는 노동시장 구조개혁 동참을 호소하면서 구체적인 실행방안까지 제시했다. 이 장관은 “상위 10% 고소득 임직원의 임금인상을 1%만 자제하면 6만명 정도 청년 신규채용이 가능하다”며 대기업의 임금인상 자제를 주문했다. 또 “연차휴가를 100% 사용하면 23만3000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향후 4년간 최대 13만3000명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특히 “직원들에게는 임금동결을 강요하면서 최고경영자(CEO)는 100억원이 넘는 연봉을 챙겨가는 행태를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노동개혁에 따른 고통분담을 경영계에 요구하면서 노동계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지작업 차원의 발언이다.

 노동계는 발끈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는 노사정 협상 결렬의 핵심”이라며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을 밀어붙이면 5월말 총파업 찬반투표를 거쳐 6월 총파업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세종=김원배 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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