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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일하고 싶다|노인문제 - 그 현주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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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빈곤한 노인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노인은 집안의 웃어른으로 또는 가사 결정권자로서의 권한과 역할이 있었지만 1960년 이후의 급속한 공업화·도시화 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구조의 변화로 인해서 노인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되고 말았다. 따라서 오늘의 노인은 빈곤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노인중 58.6%가 생계비로 인한 고통을 받고 있으며(한국여성단체협의회-1966), 60.8%가 수입이 전혀 없으며(김견현교수-l981), 45.0%의 노인이 용돈이 부족하여 경제적 불안정이 가장 큰 근심걱정(한국갤럽-1981)이 되고있다.
평균수명의 연장 및 노인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노인빈곤은 장기화·집단화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빈곤의 원인중 노령이 차지하는 비율을 점점 증가시켜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빈곤의 사회적 원인중 자신의 무능이 27.9%로서 제일 높으며 다음이 노령으로서 24.9%(김영모교수-l982)로 나타나 있다.
또한 생활보호 대상자중 세대주의 연령이 60세 이상이 52.5% (서을시-1980)이다.
우리나라 노인이 특히 빈곤한 원인은 직장에서의 조기은퇴, 연금제도를 비롯한 사회보장 제도의 미흡, 그리고 자녀양육으로 인한 과다지출을 주요한 것으로 들 수 있다.
노후를 위한 사전준비를 해놓지 못한 상태에서 은퇴하게 되고 은퇴 후 가족에 의한 부양이나 사회적 부양이 어려워지니까 빈곤해 질 수밖에 없게되는 것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노인중 노후 준비를 충분히 해 놓은 비용은 단 1.4% 밖에 안되며 70%는 전혀 또는 거의 못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노후준비를 못한 이유로는「자녀양육비의 과다」가 67.1%로 제일 많고, 「저임금」때문이 34.3%,「질병·사고」가 24.2%였다. 한편 현재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장년중에서도 60.8%가 노후준비를 하지 못하고있는 실정이다.

<용돈 어려움 많아>
노인의 용돈 사용량의 많고 적음은 노후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노인문제 연구보고서 84년4월10일자에 따르면 월간 5만원 또는 그 이상의 용돈을 쓰는 노인은 16.1%, 3만원 내외가 20.0%이다. 그 반면 l만원 내외가 24.6%, 5천원 내외 12.0%,용 돈을 거의 못쓴다는 노인도 6.6%였다. 월간 용돈 사용량이 5천원 내외 또는 거의 못쓰는 노인을 합하면 18.6%에 이르고 있는데 이러한 유형의 노인은 용돈의 곤란뿐 아니라 생계문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제기되는 노인문제중 중요한「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고학과 소외, 역할상실, 또는 노화현상으로 인한 건강문제 등이지만 우리나라 노인의 경우는 연령이 높다는 이유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배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여건 하에서 노인복지 또는 경로를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에게 일거리를 나누어주는 정책부터 개발해야 할 것으로 본다.
l981년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60세이상 노인층 69.2%가 노후에도 계속 취업할 것을 희망하고 있었고, 한국노인문제 연구소가 조사한 l982년도의 자료에서도 노인중 73%가 적합한 직업만 있으면 취업했으면 하는 욕구를 나타냈다.
필자는 1983년에 30세에서 45세까지의 청장년 420명을 대상으로 취업욕구와 관련한 의식조사를 한바있는데 이 조사에서는 93.1%가 정년 후에도 계속 일할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이들이 노후에도 일을 계속할 것을 원하는 원인을 분석해보면 ①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가 27.6%, 일하는 보람을 찾고자 함이 60.1%였다.

<일거리 만들어줘야>
현재 우리나라 노인중 직업이 있는 비율은 18.3%에 불과하고 나머지 81.7%는 직업이 없다. (노인문제 연구 보고서 제7집) 직업이 없는 노인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이유는 그들이 청장년시절에 익혔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데도 문제가 있다.
일본의 경우는 산업화 사회에서 청장년 시절을 보냈던 분들이 오늘의 노인이기 때문에 남자 노인인 경우는 40%에 가까운 비율이 현재 취업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또한 노인들의 직업유무를 지역별로 알아보면 농어촌지역 노인들은 41.3%가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대도시 노인들의 경우는 5.4%만이 직업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것은 농어촌 지역노인들은 그들이 젊은 시절에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노년기에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일련의 조사결과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오늘의 노인이나 미래의 노인 모두가 취업을 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생계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지만 이에 못지 않게 사회적 역할을 계속 수행함으로써 무용지물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구사회의 노인들은 정년 년한의 단축을 원하는 비율이 많은데 비해서 우리나라 노인들은 계속 일할 것을 갈망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선진 각국에서는 연금제도가 발달되어 있어 일하지 않고도 노후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어 구태여 일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노쇠현상이 가중되고 심신의 피로를 느끼게되므로 노동을 함에 있어서는 젊은이들에 비해 더욱 많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노인들중 일하기를 원하는 비율이 많다는 사실을 어떠한 시각에서 분석해야 할 것인가. 노인은 그들의 노후생활을 전적으로 자녀들에게 의존하는 현재 상황에 대하여 불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고령노동력 기피>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에서는 고령노동력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경영자협회 조사에 의하면 1982년 현재 1백명 이상의 종업원을 가진 업체중 86.3%가 정년제를 실시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정년연한을 살펴보면 관리직의 정년은 55세였지만 평사원 또는 단순노동의 경우는 50세로 규정하고 있었다.
관리직보다는 평사원 또는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비율이 훨씬 많음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현행 정년연한은 50세로 볼 수도 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기업체중에는 규정상으로는 정년 연령은 50세 또는 55세로 해놓고 있지만 그러한 규정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고 40대 후반만 되면 무엇인가의 이유를 붙여 조기은퇴를 강요당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중고령자들은 아직도 일할 능력이 있고 일하지 않으면 당장 생계의 위협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타의에 의해서 직장에서 물러나야 되는 경우도 결코 적지 않다.
기업에서 고령자 인력을 기피하는 원인을 분석해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연공서열형 임금제도를 채택하고 있어서 장기 근속한 연장자는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게 되는데 이들은 작업의 능률면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노동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으로서는 가능한 중고령 노동력을 기피하고 해마다 사회로 진출하는 값싼 젊은 노동자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인건비의 절감과 생산능률의 향상을 동시에 이룩해보자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많은 기업에서 중고령 노동자를 조기은퇴 시키는 이유중에는 피고용자에 대한 퇴직금 정책과도 상관관계가 있다. 기업이 퇴직금의 누적 또는 과다한 부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정년한 이상 근무한 자에 대해서는 퇴직을 유도하는 것이 기업경영의 합리화를 위해서 바람직하다.

<취업기회 넓혀야>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노인들 사회에서는 연령이 높다는 이유로 인해서 일할 기회가 배제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노인들도 생활안정을 위해서는 취업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원하고 있는데 어째서 사회는 우리들의 이러한 욕구를 등한시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는 고령자를 취업시키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비교적 냉담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젊은이들의 일자리도 부족한데 정년년한을 늘리면서까지 고령인력을 구제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다. 젊은이들은 마땅히 취업의 우선권이 부여되어야하고 남는 것이 있으면 노인에게도 일자리를 주자는 것이다. 이것은 연령이 높다는 이유 때문에 인간이 차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현재 노인들이 취업을 원하는 내용을 분석해보면 그들은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송두리째 빼앗으려는 의도가 아니라 많은 직종과 직장중 그 일부만이라도 노인세대에게 할애해 줄 것을 사회에 호소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노인들에게 일거리을 부여한다는 것은 복지적인 차원에서도 그러하지만 노동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도 보호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본다.
노인취업은 노동시장의 자유기능에 의해서는 보장 받을 수 없다.
노인들이 젊은이들과의 자유경쟁에 의해서 취업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실시하는「취업에 있어서의 연령차별 금지법」이라든가 일본에서 실시하고있는「중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등은 모두가 노동시장에서의 약자인 노인들에게 취업기화를 보장해 주기 위한 정책적 노력의 성과이다.
노인들의 취업욕구를 감소시킬 수 있는 대안중의 하나가 사회보장제도의 개발이다. 서구사회에서와 같이 공적부조 또는 연금제도가 실시되면 노인들은 직장에 머물러 있으라고 해도 그것을 마다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형편으로 보아 지금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한다는 것은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80년대에 국민고연금제도를 실시한다 하더라도 그 수혜자는 오늘의 노인이 아니라 21세기에 노인이 될 사람들일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노인을 위한 수입원 확보방법의 하나로서「취업기회 부여」를 위한 정책개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노인들의 노동력이 배제당하는 원인중에는 노동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과 노인들이 실제로 제공할 수 있는 노동의 질과는 많은 자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산업화사회가 요구하는 노동력은 고도의 기술 정밀도 속도 등인데 노인 인력중에는 그러한 요소들이 결핍되어있다.
그러므로 노인취업은 이론상으로는 매우 타당하지만 현실적으로 노인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없는 한 그 활용가치는 감소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와같은 문제점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는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물론 노인 스스로도 해야 하겠지만 국가적 지원과 폭넓은 사회적 협조가 함께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평균수명이 40대나 50대에 그쳤던 옛날과는 달리 수명이 훨씬 연장된 오늘에 와서 정년을 연장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다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심신의 기능이 저하하는 노인의 특성을 감안하여 직장내에서의 작업 재배치라든가 새로운 기술의 습득연마를 위한 직업 재훈련, 고령자에게 알맞는 일거리를 개발하는 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대체로 노인은 작업에 있어서 합수기능·속도·운동조절능력·학습능력 등에서 젊은이들에 비하여 뒤지지만 분석·판단능력이나 지구력에 있어서는 젊은이에 못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특히 오랜기간에 걸친 풍부한 근로경험이 있는 고령 노동자들은 각종 작업에 대한 노련성·작업수행에서의 응용력이 뛰어나고 안정성과 타인과의 협조성에서 장점을 갖고있다.
정년 연장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연공가산제에 대한 높은 봉급 수준과 인사상의 정체를 들고 있는데, 일정 연령(예컨대60세)이 지나면 매년 일정 비율로 봉급액을 감액시켜 나가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기업측으로서는 인건비의 과중부담 문제가 감소되고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월 소득이 감소되기는 하지만 그 대신 정년이 연장된다는 잇점이 있다. 인사 관리상의 정체를 해소하기 위하여 일정 연령에 도달한 근로자에게는 직능급으로 전환 하든가 직능 재배치에 의해서 주역에서 물러나 보조적 역할을 수행토록 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퇴직금의 과중한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일정연한 근무한자에 대하여는 그 이후부터는 퇴직금의 비율을 동일하게 지급하는 방법도 있다.
특히 외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시간근무제를 활용하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이미 퇴직한 노인들에게는 공동작업장을 마련하여 일감을 제공하거나 노인복지공장을 설치하여 운영할 수도 있다. 직종으로 분류하여 노인으로 하여금 분류하여 노인으로 하여금 우선적으로 취어케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한편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이나 관청에서 일정비율의 노인을 고용토록 하는 의무고용제의 실시도 부분적으로 시도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다만 고령자 고용업체에 대한 정부보조금지급, 자영업노인에 대한 사업자금의 융자, 고령자 고용촉진을 위한 조성금제도나 세제상의 혜택 등이 고려되어야 하며 노인직업 훈련 및 직업소개 기능의 다양화, 고령인재은행이나 인제센타의 운영 등이 아울러 강구되어야 한다.
하여튼 오늘날 고령자 취업은 ①노인 소득원의 확보 ②참여와 역할 증대 ③건강관리 ④여가선용 ⑤사회보장비의 절감이라는 측면에서 각국이 서둘러 추진하고 있으며 이와같은 일은 바로 우리사회에서도 서둘러야 할 때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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