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베는 군 위안부 부정 말고 역사를 직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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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 세계 역사학자 187명이 어제 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향해 정면으로 경고장을 날렸다.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 교수·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명예교수·피터 두스 스탠퍼드대 교수·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등은 성명을 통해 “군 위안부들에게 있었던 일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피해자들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수많은 여성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 붙잡히고 끔찍한 야만 행위를 겪었다는 증거는 분명하며…이 여성들의 이송·관리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수많은 자료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아베 총리가 미 의회 합동연설에서 인권과 인간 안보의 중요성을 언급했다”고 상기시키며 “이제 아베 총리가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방미 때 군 위안부를 ‘인신매매의 희생자’라 언급했다. 하지만 주어(主語)가 빠지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가 일말의 도덕적·법적 책임을 느낀다면 “일본군에 의한 인신매매”라고 표현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다. 아무리 상호 이해관계에 따라 미·일이 밀착해도 역사적 진실까지 뒤집을 수는 없다. 수많은 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전쟁터에서 착취당한 사실은 결코 바뀌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전 세계의 진실과 양심에 맞서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다. 그는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여부는 역사학계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지난해 일본 최대·최고 권위 역사학연구회는 “일본군의 관여 아래 강제 연행된 위안부가 존재한 것은 확고한 사실”이라 답했다. 이번 세계 역사학자들의 공동성명도 여기에 대한 메아리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이런 국내외 학자들의 양심적 목소리를 깡그리 무시한 채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다. 과연 언제까지 과거와 진실을 부정하며 아무런 사과 없이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아베 총리는 역사 문제를 역사 전쟁으로 바꿔놓았다. 그가 계속 역사 왜곡을 고집한다면 그 앞에는 전 세계의 역사학계와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