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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말·말·말 "너나 잘하세요""대통령 외국 가니 조용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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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5년 한 해도 많은 말이 세상에 뿌려졌다. 사람들을 웃고 울게 한 그 말들에는 시대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때그때의 말말말은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좌표다. 황우석 파문, 대연정 논란, 부동산대책, 안기부 불법 도청 수사, 검찰 수사지휘권 파동 등 굵직한 사건이 터지면서 새로운 말들이 쏟아졌다. 폐부를 뚫는 촌철살인의 언어도 있었고 황당한 궤변도 많았다.

"월화수목금금금 특별한 달력 따라 연구"

을유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시중의 화제가 됐던 올해의 말 가운데 주인공은 단연 황우석 교수다. 한때 국민적 영웅에서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 그의 모습은 국민을 공황이나 다름없는 심리 상태로 몰아넣었다. 황 교수는 해명 기자회견에서 "사진 촬영에서 돌이킬 수 없는 인위적 실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인위적 실수란 '조작'의 황우석식 표현이었음이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달변으로 소문난 그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우리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달력'에 따라 연구를 한다" 등 감동의 어록을 남겼다. 하지만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있다. 황 교수 연구에 체세포를 제공했던 척수장애 김모(11)군은 조작이 밝혀진 뒤 아버지에게 "나 그럼 못 걷는 거야?"라고 물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그까이꺼~뭐 대충~" 개그맨 장동민

◆너나 잘하세요=딕 아드보카트 축구대표팀 감독은 "월드컵 4강 멤버들도 정신력이 해이해졌다면 집에 가서 쉬라"며 정신무장을 강조했다. 경질된 본프레레 전 감독은 "한국 축구는 감독들의 무덤"이라고 축구협회를 비난했다. 프로골퍼 김미현은 기자들이 성적이 나쁜 이유를 묻자 "시집을 못 가서 그런 것 같다. 세리도 시집을 못 가서 성적이 나쁜 것 아닐까"라고 조크했다.

개그맨 장동민의 "그까이꺼~ 뭐 대충~"이나 컬투의 "그때 그때 달라요" 등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비꼬는 유행어로 인기를 누렸다.

특히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가 자신을 선도하려는 목사에게 쏘아붙인 "너나 잘하세요"는 사회 바닥에 깔린 냉소주의를 극적으로 압축한 말로 인구에 널리 회자됐다.

영화배우 이은주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법정 스님은 2월 동안거 해제 법문에서 "산다는 것은 일종의 장애물 경주인데도 우리 사회는 참고 기다릴 줄 모른다"고 했다.

"전자공학 전공한 공주 봤나" 박근혜 대표
"노무현 대통령이 신이냐" 문학진 의원

◆친미파에서 대연정까지=노무현 대통령은 올해에도 많은 어록을 남겼다. 노 대통령은 3월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내겐 더 힘들다"고 말했다. 친미파의 정체를 놓고 논란이 일자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부 언론인과 학자가 친미파"라고 거들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외교부에 친미파는 없다"고 해명했다.

노 대통령은 8월 방송에 나와 "연정이 되면 권력을 통째로 내놓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2선 후퇴나 임기 단축을 통해 새 시대를 시작할 수 있다"고도 했다. 현직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권력 통째 이양론''임기 단축론'은 노 대통령의 어법에 어지간히 익숙해졌던 사람들에게 다시 충격을 가했다.

대연정론에 여론이 냉담하자 조기숙 수석은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있고 국민은 아직 독재시대의 문화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에 전념하라는 야당의 요구에 대해 노 대통령은 "의사가 환자 옆에 딱 붙어서 죽으나 사나 주사만 놓으라는 소리냐"고 반론을 폈다. 그러던 노 대통령은 9월 외국 순방에 오르면서 "대통령이 비행기 타고 외국 나가니 열흘은 조용할 것"이라고 했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은 정권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자 "12개 국정과제위원회는 이순신 장군의 12척 배"라며 "아마추어가 희망"이라고 말했다.

◆까불다간 휩쓸려 간다=열린우리당은 두 차례 재.보선에서 한 명의 당선자도 못 내고 참패했다. 문희상 의원은 4월 당의장에 취임하면서 "해장국처럼 국민의 속을 확 풀어주는 정치를 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9월엔 "태풍이 올 땐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최선이고 까불다간 쓰나미에 다 휩쓸려간다"고 풀이 죽었다. 문학진 의원은 10.26 재선거 패배 뒤 "대통령이 신이냐"며 청와대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를 놓고 유시민 의원은 "대통령이 여당 내에서 작은 탄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박근혜.이명박씨가 대통령 된다고 나라 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내 반발을 샀다. 이해찬 총리는 "뉴라이트 운동은 의식의 지체현상"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남겼다.

◆나 같은 공주 봤나=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자신을 '공주'에 비유하는 세간의 평에 대해 "전자공학을 전공한 공주 본 적이 있느냐"고 반박했다. 박 대표는 3월 행정도시특별법 통과 뒤 당내 일각에서 조기 전당대회 소집 요구가 나오자 "내 사전에 재신임이란 없다"는 말로 정면돌파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자신이 불도저 스타일이란 비판에 대해 "불도저가 얼마나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장비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대응했다. 손학규 경기지사는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란 뜻의 '경포대'란 말이 있다"며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 여당은 즉각 "경포대는 경기도가 포기한 대통령 후보"라고 응수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다음 대통령은 대학 나온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참여정부 2년은 잃어버린 2년" 나성린 교수

◆갱생하는 솔개처럼=한국은행 박승 총재는 2월 기자간담회에서 "봄은 아니지만 대한(大寒)은 지났다"는 말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40년을 산 솔개는 낡은 부리를 갈아 없애는 고통을 이겨내고 갱생을 길을 선택해 30년을 더 산다"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16기가 플래시메모리를 발표하면서 "이제 창조적 생각과 가족 간의 정만 빼고 모든 기억은 반도체에 맡기라"고 호언했다. 박해춘 LG카드 사장은 "LG카드는 겨우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긴 단계"라며 업계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북한이 현대그룹 김윤규 전 부회장을 대북사업에 복귀시키라는 압력을 가하면서 파란이 일었다. 이에 현정은 회장은 "비굴한 이익보다는 정직한 양심을 택하겠다"며 뚝심을 보여 관철했다. '형제의 난'에 휩싸인 두산그룹의 박용성 전 회장은 박용오 전 회장을 겨냥해 "이번 사태는 두산그룹 경영권 분쟁이 아니라 두산산업개발 경영권 탈취미수 사건"이라고 했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참여정부 2년은 잃어버린 2년"이라며 현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등한시했다고 지적했다.

"강남 아줌마들이 정부보다 머리 좋다" 이명박 서울시장

◆말 많았던 부동산대책=부동산정책을 놓고 전선이 형성됐다. 노 대통령은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고 선언했다. 이해찬 총리는 "부동산 투기는 사회적 암"이라며 척결의지를 천명했다.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은 "헌법처럼 바꾸기 힘든 부동산정책을 내놓겠다"고 다짐했다.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대정부질문에서 "교육이나 부동산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공무원 인사 때 서울 강남 거주자를 배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명박 서울시장은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군청 수준"이라며 "강남 아줌마들이 정부보다 머리가 더 좋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시련=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6.25 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일으킨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강 교수를 구속할 수 없게 되자 김종빈 전 검찰총장은 사표를 던지면서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면 검찰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동반 퇴진 압박을 받았던 천 장관은 "암흑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수사권 독립을 위해 화려한 언행으로 검찰과 일전을 벌이고 있는 허준영 경찰청장은 "대한민국에 없는 두 가지는 다케시마(竹島)와 경찰수사권"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박한철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군자는 말을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고자 한다"고 비판했다.

◆서울대도 논란의 중심=노무현 대통령은 7월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 실시 방침에 대해 "논술고사를 본고사처럼 보겠다는 게 가장 나쁜 뉴스"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서울대를 맹공했다.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대학 입시 문제를 정부 부처에 보고하는 나라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느냐"고 반발했다. 노 대통령이 9월 "강남 학생이 서울대의 60%"라고 주장한 데 대해 서울대는 바로 "강남 학생 비율은 12.2%"란 반박 자료를 내놓았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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