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홍구칼럼

민주화 피로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사실 민주화 피로증은 유행성이 강한 국제적 질병이다. 일단 민주화의 문턱을 넘었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안정된 민주정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75년 스페인의 성공적인 권위주의체제로부터의 이탈을 기점으로 시작된 '민주화 제3의 물결'은 동유럽.옛소련.라틴아메리카.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 민주화의 실험을 가능케 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 과연 세계적 민주화 과정은 그동안 어떤 성적을 내고 있는지 살펴보려는 모임이 지난달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초청으로 프라하에서 열렸다. '프라하의 봄'으로 기억되는 체코.헝가리.폴란드 등 동유럽의 민주화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데 비해 러시아를 포함한 옛소련 지역.라틴아메리카.아시아.아프리카에서의 민주화 실험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극심한 난관과 혼란, 심지어 퇴보와 파탄에 직면하고 있다는 비관적 결론에 참석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지역에서 만연되고 있는 민주화 피로증은 몇 가지 공통된 증세에서 비롯되고 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성취감에 뒤따르는 허탈감, 민주화에 대한 과잉 기대로 인한 실망과 불만, 구체적인 정책 목표보다 유토피아의 추구에서 비롯된 이념의 교조화, 민주화투쟁의 부작용인 투쟁의 체질화와 타협문화의 부진, 민주화 이후의 빈부격차 등 불평등의 심화, 참여정치와 책임정치의 안정된 제도화의 실패 등이 그러한 증세로 쉽게 열거될 수 있다. 밖에서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함께 성공시킨 모델로 높이 평가되면서 안으로는 불만과 실망이 누적돼 가는 한국의 민주화, 그 속에서 대다수의 국민이 느끼는 피로증세는 과연 어떻게 설명돼야 할 것인가.

87년 6월항쟁과 6.29선언을 기점으로 이뤄진 한국 민주화의 성공은 바로 그 87년 체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를 둘러싼 국민적 합의의 부재와 정치의 양극화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 절대다수는 87년 권위주의 체제의 종언을 적극적으로 환영했으며 그 후 네 번의 대통령 선거 등 정치적 선택의 기회에 대거 참여함으로써 정치적 민주화를 막을 수 없는 국가발전의 대세로 수용하고 있다. 그러기에 국민은 87년 이후의 한국 정치를 민주화 세력과 권위주의 세력의 대결이라 보기보다는 다수의 온건민주세력과 소수의 급진개혁세력의 대치에 의해 한국의 민주화가 위기에 몰리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민주화는 과거에 대한 청산과정이기보다 미래를 향한 타협과 통합의 과정이어야 된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바람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피로하게 하는 것은 급진주의 이념에 입각한 소수의 독선과 교조주의가 민주적 타협과 국민 통합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타도의 대상인 '기득권 세력'이 타협의 동반자이어야 하는 단순한 민주정치의 원리가 무시되고 있어 한국 정치의 긴장은 고조되는 것이다. 나의 판단이나 소신이 옳다고 믿는 나머지 그것이 곧 다수의 힘이 되며 소수를 무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독주하면 민주화는 피곤한 사생결단의 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지금 대부분의 국민은 '우리끼리의 통일'과 같은 이념적인 문제보다 격심해진 빈부격차, 국민생활과 복지의 질적 저하 등 실생활에 근거한 정책이 우선시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민주화 피로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혁명 당시 '대중은 그들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지만 나만이 그것을 알고 있다'고 강변한 로베스피에르의 독선이 저지른 과오를 절대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 했다. 나라가 크고 융성하려면 국민이 편안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이 편안할 수 있도록 민주화 피로증을 극복하는 데 진력해야 할 때다.

이홍구 중앙일보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