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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리포트] 종이비행기 오래 날리기 고수의 비결은 “80도 위로 던져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레드불 페이퍼 윙스 대회에 오래 날리기 부문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정욱 선수. ‘버드맨’이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종이비행기를 14.19초 동안 날려 대회 세계기록을 깼다

인간이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한 후부터 꿈은 현실이 됐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꿈은 아마 간단한 종이비행기에서 출발했을 겁니다. 온갖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시대지만, 종이비행기 자체로 승부를 가리는 대회도 있답니다. 전 세계에서 종이비행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실력을 뽐내는 ‘레드불 페이퍼 윙스’ 대회입니다. 소중은 이 대회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정욱(29·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선수를 만나 종이비행기의 과학적 원리와 오래 나는 비행기 접는 방법을 알아봤습니다.

취미로 한 번쯤 날려본 종이비행기가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인정받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실제 종이비행기를 날려 기록을 측정하고 상을 주는 대회가 있다. 전 세계 71개국 3만여 명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종이비행기 국제 대회인 ‘레드불 페이퍼 윙스’다.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실내에서 종이비행기를 오래, 멀리 날리며 기록을 갱신하는 대회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 대표 선발 결승전이 열려 오래 날리기, 멀리 날리기, 곡예비행 3종목에서 각각 대표 선수가 선발됐다. 이들은 오는 8~9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위치한 레드불의 전용격납고에서 세계대회 결승전을 치르게 된다.

박주영(왼쪽)·신다인 학생기자가 이정욱 선수와 함께 종이비행기를 만들었다.

지난달 24일 소중 학생기자들은 서강대 실내체육관에 모여 우리나라 오래 날리기 대표로 뽑힌 이정욱 선수를 만났다. 레드불 페이퍼 윙스 오래 날리기 한국 챔피언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그는 이번 국내 대표 선발전에서 종이비행기를 14.19초 동안 공중에 머무르게 해 종전의 대회 세계기록인 10.68초를 깨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비공식 자체 최고 기록은 18초. 이대로 출전한다면 올해 세계 챔피언이 될 가능성도 매우 높은 상황이다.

“반갑습니다. 소중 학생기자 여러분. 오늘 저와 함께 신나게 종이비행기를 날려봐요.”

이 선수가 인사와 함께 자신의 종이비행기 ‘버드맨(Birdman)’을 공중으로 날려 보였다. 공중에서 큰 원을 몇 바퀴나 그린 후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이 마치 여유 있게 떨어지는 꽃잎과도 같았다. 종이비행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공중에 머무르는 것을 본 학생기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종이비행기를 오래 날리려면 2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좋은 비행기를 만들 것과 제대로 된 자세를 연습하는 것이다. 특히 날리는 자세를 연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좋은 공을 가져도 제대로 던지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원리다. 실제 27.9초를 비행시켜 ‘오래 날리기’ 기네스 세계기록을 보유한 타쿠오 토다 일본 종이비행기협회장의 도안은 이미 인터넷 등에 공개돼 있지만, 아직까지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이 선수는 “만드는 기술과 날리는 기술이 조화를 이뤄야만 잘 날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래 나는 비행기, 멀리 나는 비행기 모양 달라

종이비행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흔히 접는 ‘배꼽비행기’와 멀리 날리는데 유리하도록 뾰족하게 만들어진 ‘창비행기’, 오래 날리는데 유리한 ‘수잔비행기’ 등이 있다. 이 선수가 날린 종이비행기는 오래 날리기에 특화된 사각형 모양의 날개를 가진 변형 비행기다. 오래 날리기 비행기는 날개의 모양에 따라 크게 삼각·사각 2종류로 구분된다. 삼각형 날개 비행기는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기 때문에 높이 날리기는 쉽지만 활공(상승기류를 이용하지 않고 비행하는 것)에는 불리하다. 반면 사각형 날개 비행기는 날개 면적이 삼각형에 비해 넓어 활공에 유리하지만, 출발 과정에서 공기의 저항을 많이 받기 때문에 높이 날리기는 어렵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니 상황과 종목에 맞는 비행기를 택해 접으면 된다.

자세는 정면을 바라봤을 때 위로 80도 정도의 각도로 날리는 것이 좋다. 80도로 비행기를 날리면 적당히 위로 올라간 채 오래 공중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 만일 욕심을 부려 80도 이상의 각도로 공중에 던지면 실속(비행기의 양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해 추락할 수 있다. 학생기자들이 85~90도 각도로 날린 종이비행기들은 전부 수직으로 올라갔다가 수직으로 낙하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는 공기역학이라는 과학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실내 공간에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사실 엄청난 양의 공기로 가득 차 있어요. 비행기가 공기를 타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

실외에서 비행기를 날리면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공정한 승부를 가리기 힘들다.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실내에서는 순수한 실력만으로 승부해야 한다. 기류(공기의 흐름)를 잘 파악해야 하는 이유다. 어두운 방 안에 조명을 켜 놓으면 열이 발생해 조명 부근의 공기가 데워져 기류가 생기는 원리를 생각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창문 틈의 햇빛 등으로 인해 실내에 생길 수 있는 미세한 기류를 찾는 것이 오래 날리기의 핵심이다. 비행기가 날아가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류를 만나는 순간 2~3초의 체공시간(공중에 머무르는 시간)을 벌 수 있다. 다만 기류를 손쉽게 찾으려면 오랜 경험과 연습이 필요하고 약간의 운도 따라야 한다.

이 선수는 비행기가 공기를 타고 수영하듯 날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기가 비행기를 날리는 것이 아닌, 비행기가 공기를 가르고 가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서는 야구의 와인드업(투수가 공을 던지기 위해 양 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동작)자세를 익혀야 한다. 대회에서 비행기를 날릴 때 두 다리가 땅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야구의 와인드업은 공을 앞으로 던지는 동작이지만, 종이비행기의 와인드업은 비행기를 아래에서 위로 던지는 동작을 취해야 한다. “앉은 자세에서 몸을 위로 회전시키며 비행기를 날리면 됩니다. 좀 더 높이, 멀리 날릴 수 있는 비결이죠. 자신이 날릴 비행기의 유형과 자세를 잘 알고 있다면 누구나 저처럼 날릴 수 있답니다.”

레드불 페이퍼 윙스
종이비행기 세계 기록 경신을 목표로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종이비행기 국제 대회.
오래 날리기, 멀리 날리기, 곡예비행 등 3가지 부문으로 나눠 우승자를 가린다.
2006년 48개국 9500명이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매 3년마다 열린다.
2012년에는 83개국 3만7000명이 출전했다. 4회째인 올해는 전 세계 71개국 대표들이 참가한다.

이정욱 선수 인터뷰
남들에겐 장난감인 종이비행기
15년간 날려 한국 챔피언 됐죠

배꼽비행기를 만드는 박주영(왼쪽) 학생기자

―종이비행기 날리기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중학생 때부터 했으니 약 15년 정도 날린 셈입니다. 저는 경북 상주 시골마을 출신인데다 당시에는 인터넷과 케이블TV채널이 없어 마땅한 놀 거리가 부족했죠. 어느 날 켄 블랙번이라는 사람이 종이비행기를 날려 27.6초 동안 공중에 띄워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또 학교에서 항공부 동아리에 가입해 공기역학과 같은 내용을 공부하며 종이비행기 날리기에 응용하기도 했고요.”

―왜 하필 종이비행기인가요. “날릴 수 있는 비행기의 종류는 많습니다. 수동으로 동력을 감아 조종하는 모형항공기도 있고, 원격으로 조종하는 RC비행기도 있죠. 이런 비행기들은 가격이 비싸고 제작도 어려운 편이었죠. 대신 공기역학의 원리가 똑같이 적용되는 종이비행기를 택했습니다.”

―‘버드맨’이란 이름을 비행기에 붙인 이유는. “종이비행기에도 이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고민하던 중 버드맨이란 영화를 봤어요. 비행기와 관련은 별로 없는 영화지만 무척 감명 깊었죠. 또 버드맨은 비행가(aviator)라는 뜻을 가진 대명사이기도 해요. 제 비행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붙이게 됐습니다.”

―대회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워낙 종이비행기를 좋아해 평소에도 관련 대회를 찾아보는 편이었어요. 레드불 페이퍼 윙스의 경우 2006년부터 3년 주기로 개최되는 대회인데, 마침 올해에도 열린다고 해서 레드불 회사에 먼저 연락해 참가하게 됐어요. 기술적으로 도움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참가했는데 결과도 좋아 기뻤죠.”

―국가대표로 선발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정말 좋았어요. 다른 사람에겐 종이비행기가 그저 장난감일 수 있겠지만 제겐 의미가 달라요. 오랫동안 종이비행기로 세계 무대에 서게 될 날을 꿈꿔왔으니까요. 제 장래희망은 이색스포츠 마케터입니다. 세계에서 스포츠마케팅을 가장 잘하는 기업 중 하나인 레드불의 본사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태극기를 걸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경쟁할 생각에 기쁘기도 하고요. 꼭 우승하겠습니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동행취재=박주영(서울 목동초 5)·신다인(서울 일원초 6)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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