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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트렌드]마을 벽화는 꼭 재능기부여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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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예쁘게 나오기로 유명한 통영 동피랑 마을과 부산 감천 문화 마을은 벽화마을 프로젝트가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알록달록한 색과 재미있는 그림으로 쇠락한 달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환경디자인을 통한 범죄 예방’에 한몫 하기도 했다.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주민이 불편을 겪기도 하지만, 관광수익이 주민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형성되어 지역경제에 이바지한다.

그런데 이런 성공을 보고 지방자치단체들이 무분별하게 벽화마을을 조성하면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 마을 정체성과 상관없는 벽화가 그려지거나, 벽화 퀄리티가 낮은 경우가 적지 않다. 게다가 지속적 관리·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벽화를 그리기 전보다 더 흉물스럽게 변하기도 한다.

벽화마을 성공사례인 부산 감천 문화 마을

여기에 덧붙여 한가지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열정 페이’와 ‘강제 재능기부’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다수의 벽화 마을 프로젝트가 재능기부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다. 포털에서 ‘벽화 마을’로 검색을 해보자. “미대생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으로 탄생한 벽화”“젊은 예술가들, 벽화로 재능 기부” 등의 구절을 수없이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 벽화 프로젝트의 기원을 따져보면 아이로니컬하다. 그 기원은 흔히 ‘우체국 벽화’라고 불리는 미국 대공황 시대의 뉴딜 벽화(New Deal murals)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가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있을 때, 한 화가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국가에서 화가들을 고용해 우체국 같은 공공기관에 벽화를 그리게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루스벨트는 기막힌 아이디어라고 감탄했다.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은 미술가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동시에 미술관에 갈 시간적·금전적 여유가 없는 서민들에게 진짜 그림을 실물로 볼 기회를 주는 프로젝트니까. 이렇게 해서 대공황기 뉴딜 아트를 대표하는 우체국 벽화 프로젝트가 시작됐던 것이다.

이렇게 뉴딜 벽화는 예술가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한마디로 그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 탄생했다. 그런데 뉴딜 벽화의 먼 후계자라고 할 한국의 벽화마을 프로젝트는 대부분 공짜 재능'기부'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한국 벽화마을 프로젝트의 출발지점은 낙후된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것으로, 예술가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뉴딜 벽화의 출발지점과는 다소 다르다. 그러나 현대 한국 또한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일자리 부족, 그리고 열정 페이라는 명목의 적은 보상으로 고통 받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재능기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무분별한 벽화마을 프로젝트의 문제점들, 다시 말해 벽화의 낮은 퀄리티나 지속적인 유지보수의 결여와도 궁극적으로 연관된다. 예술가들이 처음부터 프로젝트를 주도한 경우가 아닌 한 일시적으로 봉사한 이들이 벽화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기는 힘들다. 특히 아마추어 봉사단이라면 처음부터 퀄리티 보장도 어렵다.

결국 퀄리티 있고 지속가능한 벽화마을을 조성하려면 지자체에서 예술가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형식이어야 한다. 재능기부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문소영 코리아 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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