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서」가 몰고온 「민정회오리」-대표위원이 교체되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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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25 민정당 당직개편은 정내혁 전 민정당대표의 치부내용을 폭로한 익명의 투서가 지난 21일 3개 일간지에 배달되면서 일은 터지기 시작했다.
이러이러한 설명까지 붙인 여러 장의 컬러사진과 증빙서류 등이 동봉된 이 투서를 신문사측은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어 일단 사실여부를 캐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민정당도 비상이 걸리면서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88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여키 위해 귀향했다가 우천으로 행사가 취소되는 바람에 22일 하오 상경한 당시 권익현 총장은 투서에 관한 보고를 받는 즉시 당사에서 이종찬·김용태 대변인과 함께 외부인을 물리친 채 대책을 숙의하기 시작. 당시 민정당은 똑같은 투서를 며칠 전에 받고 사실 여부를 알아보도록 관계기관에 부탁은 했으나 총선거를 앞둔 악의적인 모략으로 생각, 즉각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21일까지만 해도 정 대표는 동향의 금식 국회농수산위원장에게 자신의 입장과 심경을 토로하면서 본인의 거취문제를 포함, 사건처리방안을 당직자들과 상의해줄 것을 부탁했다.
또 23일엔 자진해서 기자들에게 투서내용을 해명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정 대표는 투서에 담겨진 내용을 대부분 시인했지만 『제5공화국에 들어와 국회의장과 당 대표 등을 거치면서 치부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집사람이 60년대부터 변두리 땅을 조금씩 사둔 것』이라고 권력형 축제를 강력히 부인.
그러나 바로 이날 정 대표는 정순덕 정무수석을 통해 전두환 총재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정 대표위원의 사표수리는 지난 주말 결정됐다. 정 대표가 23일 출입기자들에게 투서내용의 진상을 해명하기 전후해 많은 소속의원들이 핵심 당직자들에게 정 대표의 처신을 비판했다. 어떤 의원은 정 대표의 치부액이 상식을 넘는다면서 권력형 부조리로 문제된 오치성씨의 재산이 30억대였음을 지적했으며 심지어 어떤 의원은 『자칫 바가지를 뒤집어쓸 일을 왜 당이 앞장서 막으려 다니느냐』고 노골적으로 불평. 이런 분위기에서 권익현 사무총장·이종찬 총무는 이를 『수습할 수 없는 상황』으로 판단했다.
일요일 하루종일 정 대표는 다음날(25일)상으로 잡힌 총재와의 면담을 골똘히 생각했다는 것이 정 대표 측근의 설명. 그러나 저녁 무렵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면담스케줄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실은 이날 투서내용의 조사결과가 최종보고 되었고 그 내용은 정 대표의 해명을 들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료했다는 얘기.
○…25일 아침 전경련 회관에서 조찬을 경해 있은 중집위에서 정 대표는 다시 한번 투서내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으나 당 간부들은 이때쯤에는 청와대 면담스케줄의 취소의미를 알아채고 있었다.
구체적인 개편임박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25일 하오 국회본회의 도중 권 총장이 청와대로부터 들어오라는 전갈을 받고 감사원잔 임명 동의안 투표를 서둘러 마친 뒤 본회의장을 빠져나간 후부터.
하오 4시30분개 국회로 다시 돌아온 권 총장은 곧장 대표 위원실로 들어가 정 대표와 이종찬 총무·정석모 정책의장· 김용태 대변인과 함께 구수 회의에 들어가 곧 중대발표가 있으리라는 예감을 갖게 했다.
이윽고 하오5시10분쯤 정 대표가 자기 방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혼자 걸어나왔고 뒤쫓아간 보도진들이 『퇴진하는 겁니까』고 묻자 정씨는 『그렇다』고 짤막한 한마디로 자신의 퇴진을 밝혔다.
발표예정시간보다 10분쯤 빠른 하오5시50분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실에 들른 김 대변인은 짤막한 인사발표문을 읽어 내려갔고 이 순간부터 정 대표는 정전대표가 됐다.
○…민정당이 투서를 접수한 것은 약 2주일전. 투서군가 『민정당원으로서 공분을 참지 못해…』라고 밝히고 있어 민정당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지난 연초부터 정 대표의 지역구에서는 『정 대표가 축제 때문에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이것이 당의 안테나에 잡혔기 때문이다.
지역구의 이해다툼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짐작은 누구나 할 수 있었고 처음부터 문형태씨 가 혐의를 받았다.
투서가 지난주 언론기관에 접수되자 당국은 문씨를 정식으로 수사했고 문씨의 혐의전모가 드러났다는 얘기다.
문씨는 그동안 자신이 4성 장군출신임을 내세워 『4성 장군이 야당을 한적이 없다』며 자신은 민정당 공천을 받든지 아니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해왔다.
지난 2월25일 2차 해금에서 풀리자 그는 이런 말을 도처에서 하고 다녔고 심지어 자신이 3성인 정 대표보다 화려한 군 경력을 가졌음을 과시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과거 군 시절부터 정 대표와 문씨의 「숙적관계」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공화당시절에는 문씨가 계속 지역구(화순-곡성)를 차지했고 정 대표는 서울성배에서 출마했다. 때문에 11대에 비로소 고향을 찾은 정 대표로서는 문씨의 해금이 처음부터 부담이었던 셈. <전육·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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