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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은 빡빡한데 쓸 곳은 많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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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맘때부터 경제기획원 4층 예산실은 방마다 남대문시장을 방불케 한다. 책상을 치며 고성이 오간다. 예산을 더 달라, 못 주겠다는 실랑이다. 작년에는 오히려 동결의 「서슬」때문에 비교적 조용히 넘어갔으나 올해는 여간 시끄럽지 않을 전망이다.
공무원처우개선을 비롯해 갖가지 동결의 후유증을 치료해야 하는 데다 어차피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는 선거와 각종국체행사들이 줄지어 임박해있기 때문이다.
특히 난처한 점은 방위비를 비롯한 소위 경직성 예산들이 딱 버티고 있어 예산당국의 뜻대로 내년 예산을 9·7%증가 선에서 억제할 경우 다른 정부사업 예산들은 사실상 올해도 동결이나 다름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방부가 증액 신청해온 7천6백40억원은 종전관례대로 GNP의 6%로 따져 요구한 것이다. 내년 예산을 9·7% 늘릴 경우 전체예산규모는 1조6백37억원 가량이 더 많아지는데 이것의 70% 이상을 방위비가 차지한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법으로 정해놓은 교육재정교부금(2천7백억원)과 지방재정교부금(1천억원), 그리고 공무원들의 증원과 호봉승급에 따른 인건비까지 따지면 경직성예산만도 1조1천8백60억원이 더 늘어나야 한다.
이런 형편에서 금년에 동결시켰던 공무원 봉급도 올려주고 정부계획대로 한국은행빚 (1천억원 가량)도 갚고, 그리고 수많은 정부사업을 벌여야한다.
따라서 경직성 예산을 대폭 깎던가 예산증가율을 크게 올릴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각부처가 사업비로 신청한 예산은 자그마치 금년보다 51·7%를 늘려 1조7천1백85억원을 더 달라는 것이다. 방위비를 절반으로 깎는다 해도 사업비는 10분의1로 줄여야 할 판이다.
그러나 사업비 신청내용을 보면 저마다 시급하고 불가피한 것들이라 무엇을 갈라내야 할지 난감하다는 것이 실무당국자들의 고백이다.
우선 계속사업들 중에서 도저히 중단할 수 없는 것들이 잔뜩 밀려있다. 합천댐(1백77억원) 주암댐(2백13억원) 낙동강하구언(60억원) 금강지구개발(1백83억원) 광양공업기지건설(1백25억원)등이 그러한 것들로 사실상 경직성예산이나 다름없다(괄호 안의 숫자는 증액 신청분).
수정5차5개년 계획에서 약속한 사업들도 최우선순위를 고집하고있다.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수도사업에 3백70억원을 더 달라는 것이고 전주권 개발사업에 1백12억원 등도 피할 수 없는 돈들이다.
내년에 1백91억원을 더 들여 모두 5백4억원을 요구한 김포공항확장사업은 86년 아시안게임 때문에 역시 불가피하고 중앙청을 뜯어고쳐 벌이고있는 중앙박물관은 내년 가을에 서울에서 열리는 IMF (국제통화기금)총회에 맞춰 개관하기 위해 1백억원을 더 들여야한다.
1천1백45억원을 추가 요구한 일반도로건설이나 5백44억원의 차관도로의 경우는 시급한 것들은 아닌 반면 주로 지방사업이라는 점에서 선거와 매우 관련이 깊은 케이스들이다.
신규사업요구 역시 만만치 않다. 총공사비 3천2백43억원이 들어갈 서울∼대전간 고속도로신설은 착공조로 3백5억원을 신청했고 신항만건설에도 1백6억원을 요구했다. 사실상 추진계획이 확정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미룰 수 없는 일들이다.
2백12억원을 요구한 농촌종합개발사업 역시 관계법까지 새로 정해 농촌부업을 육성하겠다고 약속한 마당이라 피할 수 없는 돈이다.
이런 가운데도 정부는 올해의 5천8백억원 흑자에 이어 내년에도 6천5백억원 수준의 흑자를 남겨 정부 빚(한은차입)을 지지 않겠다는 의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빚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의 계산처럼 방위비가 전체 예산 증액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 도저히 앞뒤를 맞출 수 없는 계산들이다. 결국 오는 9월에 최종결정이 나겠으나 방위비를 GNP의 6%로 한다는 원칙을 조정하지 않는 한 다른 정부사업을 또다시 동결하는 사태는 피할 수 없게 되어있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계산에는 공무원의 처우개선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5%만 올려도 4백억원 이상이 더 들어가야 한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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