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식의 야구노트] 내 다리가 어때서 … 고민 깊은 강정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강정호가 ‘레그킥 딜레마’에 빠졌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 타이밍을 맞추는 동작일 뿐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반면 야구 칼럼니스트 페로토는 “레그킥 동작 후 배트 스피드가 느리다”고 지적했다. [사진 뉴스엔]

2001년 일본 최고의 타자 스즈키 이치로(42)는 특유의 ‘시계추 타법’을 버렸다. 왼손 타자인 그는 오른 다리를 허리 높이까지 올렸다가 내딛는(레그킥) 타법을 썼는데 그 해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뒤 하체를 거의 고정했다. 폼이 바뀌었지만 이치로의 안타 행진은 계속됐다. 올해 강정호(28·피츠버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 이치로처럼 ‘레그킥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강정호는 27일(한국시간) 애리조나와의 원정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주전 유격수 조디 머서가 부상에서 돌아온 뒤 3경기 연속 결장이다. 지난주 강정호는 머서가 빠진 3경기에서 9타수 3안타 4타점으로 활약했지만 사흘 만에 벤치로 돌아갔다. 클린트 허들 피츠버그 감독은 “강정호를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강정호에 대한 현지 평가는 꽤 괜찮다. 우려했던 내야 수비에서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마쓰이 가즈오, 니시오카 쓰요시 등 일본인 내야수와 달리 강정호는 감각적인 포구와 강한 송구를 자랑하고 있다. 무엇보다 펀치력을 갖춘 내야수라는 점이 강정호의 매력이다.

 문제는 타격의 정확성이다. 지난주 반짝 활약을 보였지만 강정호의 타율은 0.200(20타수 4안타)에 그치고 있다. 볼넷 1개를 얻는 동안 삼진을 4개나 당했다. 폼이 불안정한 게 더욱 큰 고민이다. 오른손 타자인 강정호는 한국에서처럼 왼발을 드는 레그킥을 하다가 2스트라이크 이후엔 다리를 지면에 붙인 채 타격한다. 그의 안타 4개 중 2개는 레그킥을 이용한 강한 타구였고, 2개는 2스트라이크 이후 가볍게 갖다 댄 것이다. 볼카운트에 따라 스윙 을 조절하는 타자들은 있지만 강정호처럼 두 가지 폼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피츠버그 입단에 앞서 강정호는 “레그킥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10년 가까이 유지한 폼을 바꾸는 건 큰 모험이기 때문이다. 또 레그킥을 해야 자신의 가치(장타력)를 유지할 수 있다. 레그킥을 쓰면 체중이 뒤로 갔다가 앞으로 나오기 때문에 파워 배팅에 유리하다. 움직임이 큰 대신 정확성은 떨어진다. 타격폼이 크면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르고 현란한 공에 대처하기 어렵다.

 이치로는 1999년과 2000년 시애틀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면서 변신의 필요성을 느꼈다. 컷패스트볼, 투심패스트볼, 싱킹패스트볼 등 빅리거의 현란한 공을 때리려면 (장타를 포기하더라도) 간결한 폼이 필요했다. 지난 2월 시범경기에서 강정호도 이치로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2년에 걸쳐 레그킥을 버린 이치로와 달리 강정호는 시행착오를 거칠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았다.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 호세 바티스타(토론토) 등 메이저리그 정상급 타자 몇몇이 레그킥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강정호만큼 레그킥의 범위가 크지 않다. 빠르게 다리를 올렸다가 바로 내딛는다. 그래서 메이저리그가 강정호의 레그킥을 지적하는 것이다. 결국 강정호도 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레그킥을 유지해도 폭을 줄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백업선수로 가끔 타석에 나선다면 변신은 커녕 타격감을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게 문제다. 낯선 투수들을 불편한 폼으로 상대해야 한다. 때문에 일부 현지 언론은 “강정호가 마이너리그로 가서 많은 투수들을 상대하는 게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수 이동은 구단의 몫이지만, 강정호도 심각하게 고민한 뒤 결정해야 한다. 레그킥을 버릴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 수정해서 쓸 것인지. 과거의 이치로처럼 강정호도 ‘레그킥 딜레마’를 극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