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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교육이 미래" 9개 국가에 학교 113개 세워준 '구호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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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세계적 수퍼모델 페트라 넴코바(36)에겐 생일이 두 개다. 하나는 6월 24일. 그는 1979년 이날 체코의 카르비나에서 태어났다. 또 하나는 12월 26일. 2004년 태국의 카오락에서 ‘다시’ 태어난 날이다. 둘째 생일이 없었다면 그는 그저 그런 모델에 불과했을 거다. 할리우드 배우 숀 펜, 영국 가수 제임스 블런트, 영국 배우 제이미 벨만과의 스캔들로 가십을 장식하거나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에서 실수로 드레스가 흘러내릴 뻔한 해프닝의 주인공이거나.

 그는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 쓰나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이후 부상과 트라우마를 털고 재기했다. 계기는 자선활동이었다. 쓰나미 1년 후인 2005년 해피하츠펀드(Happy Hearts Fund·HHF)를 만들었다. 자연재해로 무너진 제3세계에 학교를 다시 짓는 사업을 펼치는 단체다.

 넴코바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세계여행관광협회(WTTC) 글로벌 총회에서 HHF의 대표로 참석했다. ‘자선을 통한 재창조’라는 주제로 자신의 비전을 밝혔다. 미국 방송사 CBS의 피터 그린버그와의 대담 형식이었다. SNS를 통해 질문을 미리 받았다. 15~16일 이틀간 열린 행사는 ‘관광업계의 올림픽’이라 불린다.

페트라 넴코바는 “예전엔 늘 무거운 게 어깨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2004년 이후 그 짐을 덜었고 지금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진 WTTC 사무국]

 -당신의 자선사업은 응급구호(first response)와 다르다.

 “맞다. 응급팀이 철수하면 보통 자연재해 피해 지역에 대한 지원이 끊긴다. 이런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왔다.”

2013년 칸 국제영화제 레드 카펫 위의 페트라 넴코바. 그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자연재해로 부서진 학교를 다시 짓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아이티의 전 총리 로랑 라모트와 교제 중인 것으로 보도됐다(위부터). [HHF·AP=뉴시스]

 HHF는 2005년부터 24일 현재까지 9개 국가에서 113개의 학교를 재건했다. 5만 명의 학생이 혜택을 봤다. 학교 하나를 짓는 데 16만 달러(약 1억7300만원)가 든다. 그는 ‘행복한 마음들(Happy Hearts)’이란 이름에 대해선 “다른 사람을 도우면 그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고, 동시에 당신의 마음도 행복해진다”고 설명했다.

 HHF가 지금까지 1430만 달러(약 155억원)의 기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톱모델로서 넴코바의 브랜드 파워 덕분이다. 스위스 시계 쇼파드와 화장품 크리니크 등 명품 브랜드가 HHF와 협업한다. 그는 20세 때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모델이 됐다. 2002~2006년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의 수영복 모델로 선정됐다. SI의 수영복 모델은 그해 패션계 최고의 모델이 뽑힌다. 베네통·불가리·카르티에·클라린스 등의 광고 모델로도 활동했다. ‘엘르’ ‘코스모폴리탄’ 등 패션잡지 표지에도 그의 사진이 실렸다. 올해로 모델로선 나이가 많은 편인 36세이지만 영국의 속옷 브랜드인 얼티모와 계약했다. 2013년엔 ‘비 더 라이트 NY(Be The Light NY)’란 인테리어 소품 브랜드를 론칭했다. 수익은 HHF의 사업에 쓰인다.

 -학교는 지역사회에 어떤 의미인가.

 “학생들은 학교에서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 교육을 받는다.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면 학부모는 일을 나갈 수 있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 괜찮은 학교를 다시 세우면 다른 곳에서 사람들이 몰린다. 피해 지역은 점점 경제적으로 나아진다. 이 모든 게 학교 재건이 가져오는 효과다.”

 이어 넴코바는 교육의 힘을 이렇게 설명했다. “2004년 영국 소녀 틸리 스미스는 태국에서 가족과 있었다. 스미스는 지리 수업에서 지진과 쓰나미에 대해 배웠다. 그래서 쓰나미 징조를 본 뒤 가족과 해변에 있던 100여 명에게 경고해 모두의 목숨을 구했다. 교육의 힘은 이런 거다. 교육의 힘은 당신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나 가족이 없는 아이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나눠져야 한다. 그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재해 복구가 중요하지만 재해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걸 사람들이 자주 잊는다.

 “중요한 과제는 집과 학교를 더 안전하게 지어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재해 예방에 쓰인 1달러는 재해 복구에 쓰이는 7달러의 값어치를 한다고 한다. 2004년 이후로 자연재해는 더 늘었고, 앞으로 더 많이 늘어날 거다. 사전(proactive) 대책이 필요하다.”

 -한 개의 학교를 다시 세우려면 무엇이 필요하나.

 “피해 지역의 개인과 회사 차원의 파트너십이다. 비정부기구(NGO)와 지방정부의 협력도 필요하다. 우리는 입찰을 통해 피해 지역의 업체에 공사를 맡긴다. 피해 지역은 공사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 만일 적절한 파트너를 찾을 수 없다면 그 지역엔 안 간다. 또 가장 중요한 일은 지역 주민들이 동참하는 거다. 새 학교를 지을 땅을 알아보거나 지역에서 모금을 해야 한다. 그 학교는 우리의 학교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학교이기 때문이다.”

 -9개국이 어딘가.

 “처음 태국에 한 학교로 시작했다. 점차 인도네시아·필리핀·페루·멕시코·칠레·아이티·콜롬비아로 늘렸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로 피해를 본 미국의 학교도 도왔다.”

 2004년 12월 26일 태국의 카오락 해변. 넴코바는 약혼자인 영국의 사진작가 사이먼 애틀리와 휴가를 보내던 중이었다. 그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쓰나미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다. 갑자기 거대한 물결이 몰려왔다. 가까스로 지붕으로 올라갔다. 사이먼이 멀어져 가는 걸 지켜봤다. 물이 더 차올라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때 ‘지금이 죽을 때라면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기적적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바다 쪽으로 휩쓸려 가자 손을 뻗쳐 야자나무를 간신히 잡았다. 많은 이가 야자나무를 놓쳤다. 야자나무에 매달린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힘에 부쳐 버티지 못했다.”

 8시간 만에 넴코바는 구출됐다. 당시 28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이먼의 시체는 석 달 후 발견됐다. 넴코바는 청중에게 “자연재해를 겪은 뒤 당신은 뭐든지 할 수 있게 된다. 대자연 속에 한낱 작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지원 국가를 더 늘릴 생각인가.

 “지난달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2개의 학교를 새로 열었다. 이 학교들은 2009년 지진 때 무너졌다. 6년 전 일이다. 두 학교의 교장 선생님들은 개교식장에서 울었다. 교장과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지진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집과 학교도 부서졌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후 6년간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가건물에서 교구나 학용품도 없이 힘들게 학교를 지켰다. 6년이라면 초등학교 교육기간이다. 당분간 9개 국가에 집중할 계획이다.”

 -요즘 자원봉사 관광(volunteer tourism)이나 봉사활동(volunteerism)을 떠난 사람이 많다.

 “우리 사업 중 하나는 가족과 함께 자원봉사 휴가를 떠나는 거다.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진짜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 아이들은 한 주나 반 주 정도 지역의 학교에서 문화를 배우고 재건사업을 도우며 그곳 아이들과 논다. 이런 기회를 더 늘리려고 한다.”

 넴코바는 “지금이 아니라 더 먼 장래를 위해 의식 있고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앞으로 더 많은 재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제 자연재해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더 이상 제3세계의 어느 이름 모를 해변의 문제가 아니다.”

마드리드=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S BOX] 헵번·졸리·키드먼 … 자선활동 미녀 배우들 많아

왼쪽부터 오드리 헵번, 다이애나 비, 앤젤리나 졸리.

아름다움은 세상을 바꾼다. 유명인(celebrity)이자 자선가(philanthropist)로 불리는 미녀의 원조는 오드리 헵번(1929~93)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식량난을 겪었다. 이 경험 때문에 아프리카·남미·아시아의 어린이를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한다. 유니세프의 대사로 활약했다. 대장암 투병 중인 92년 소말리아를 찾아 봉사활동을 했다. 노년의 헵번이 젊었을 때보다 더 예쁘다고 불리는 이유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1961~97)도 자선에 적극적이었다. 87년 4월 에이즈 환자의 손을 잡는 모습이 전 세계 언론에 실렸다. ‘손만 대도 에이즈에 감염된다’는 오해를 불식시켰다. 국제적십자사의 지뢰 제거 운동에 참여했다. 이런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전 세계인 모두 아쉬워했다.

 앤젤리나 졸리(39)가 자선가로 변신한 건 2001년 영화 ‘툼 레이더’를 캄보디아에서 찍으면서다. 그는 촬영지에서 전쟁의 후유증을 목격한 뒤 유엔 난민기구(UNHCR)에 연락했다. 이후 전 세계의 난민 캠프를 찾아다녔다. 유니세프 긴급구호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브래드 피트와 결혼해 세 아이를 낳았지만 캄보디아·베트남·에티오피아에서 세 아이를 입양했다. 곧 시리아 국적의 소녀를 일곱째 아이로 입양할 계획이다. 졸리는 “영화 한 편을 더 찍고 은퇴한 뒤 인도주의 활동과 정치·사회적 문제에 더욱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니콜 키드먼(47)은 전 세계 어려운 형편의 어린이를 위한 모금에 참여했다. 이 공로로 2004년 유엔 ‘세계의 시민’으로 선정됐다. 샌드라 불럭(51)과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에 출연한 에바 롱고비아(40)도 자선활동에 열심인 배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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