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석유쇼크」는 없을 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연달아 일어나는 유조선 피격사건은 페르시아만 선박취항을 중단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24일 공격을 받은 선박 3척을 포함해 지난 1개월 동안 12척이 공습을 받았다.
페르시아만을 항해하는 유조선의 전쟁위험 보험료가 최근 10일 사이에 3배나 껑충 뛰고 해운회사들은 언제 공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아예 유조선을 묶어 놓은 채 바람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란 및 이라크가 상대방의 석유수출기지를 강력히 봉쇄하겠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은 가운데 유조선 취항이 계속 중단된다면 실질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것과 똑같은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현재 이 해협의 유조선 운항률은 평소의 8분의 1로 뚝 떨어졌으며 피격선박 증가에 따라 운항상태도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해역을 거쳐 수송되는 원유에 목줄을 대고 있는 소비국들이 그래도 고통을 덜 겪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 사재기 등 과민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차, 2차 오일쇼크는 양적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 소비국들이 현물시장에서 닥치는 대로 원유를 사들였기 때문에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러나 원유의 가수요가 촉발될 수 있는 계기는 현재 중동지역에 산재해 있다.
지난 16일 유조선 피습을 당한 이래 침묵만 지켜왔던 사우디아라비아가 필요한 경우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천명하고 쿠웨이트와 함께 호크 지대공 미사일 이동 배치, 전투기 요격준비 등 군사적 대응책을 세우고 있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 외곽에 이미 14척의 미 군함이 배치되었으며 이밖에 영국과 프랑스 군함도 미국과 합동작전에 들어갈 태세를 갖추는 등 전운이 짙다.
전쟁 당사자들인 이란과 이라크는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서방 및 GCC(걸프 협력위원회) 회원국들의 외교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호전적 자세를 경화시키며 심각한 상황으로 국면을 몰아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하에서도 석유 소비국들이 사재기를 자제한다면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기준 원유가격은 현재의 1배럴(1백 59ℓ)에 29달러 가격수준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멕시코와 영국등 비OPEC의 산유량이 OPEC시장 점유율만큼 생산되며 비축량도 적지 않아 3차 오일쇼크의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계산에서다.
그러나 멕시코를 제외한 대부분의 비OPEC 산유국(영국 포함)의 원유매장량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으며 자원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생산량을 늘린다하더라도 시굴 및 채굴에 따른 생산 코스트 상승과 경기회복이 가져온 수요증가로 가격상승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란-이라크의 물리적인 방법에 의해 페르시아 만으로부터의 원유공급이 중단된다면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애 있는 얀부항으로 하루 90만배럴의 원유를 수송할 계획이다. 이밖에 생산시설이 남아도는 나이지리아 등으로부터 3백만배럴을 더 뽑아내 어느 정도 페르시아만 봉쇄의 위험을 커버할 수 있다는 것.
미국이 페르시아만 사태에 단독 개입하기 어려운 것은 이 해역 봉쇄에 따라 걸프 원유수송에 깊이 의존하고 있는 우방들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아랍국가들의 반미감정을 부채질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선진공업국가들은 IEA(국제에너지기구)를 중심으로 원유 긴급융통제도의 발동을 검토하고 있다. 1차 오일쇼크 이후 마련된 이 제도는 아직까지 실시된 적이 없지만 가맹국 전체의 원유소비량 중 7%에 해당하는 만큼 공급불안이 가중될 경우 회원국끼리 서로 빌려주고 받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한국은 대 중동 원유의존도가 62%를 넘고 있지만 비상시 이런 혜택을 받을 길이 없다. 지난 81년 한미간에 긴급할 때 에너지협력을 한다는 원칙만을 발표했을 뿐 구체적인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이란의 잠재적 공격 대상이 되고있는 GCC 회원국들이 방어능력을 강화하면서 페르시아만의 피고도 한층 높아졌다. 전쟁이 진정되는 기미가 나타나기는커녕 잇따른 유조선 및 상선 피격으로 의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