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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치기 진보·보수주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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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교육재료였다. 정치와 이념을 넘어서 온 국민이 함께 고민하고 기준을 세우는 데 동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진정한 거대담론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물론 황 교수팀이 연구원의 난자를 채취하거나 난자 제공자에게 150만원씩 지급하지 않았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황 교수는 생명공학 분야의 선구자였다. 그가 연구를 시작한 2002년에는 앞서간 자가 마련해 놓은 지침도 없었고 생명윤리 기준도 들쭉날쭉했다. 지금처럼 그의 연구에 대한 이해나 지지가 높지도 않았으니 난자 기증자가 줄을 섰을 리도 없다. 그러다 보니 관습에 따라 별 문제의식 없이 난자를 확보했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논문을 게재하기 위해서는 사이언스지의 윤리적 기준을 충족시켜야 했다. 황 교수팀은 이 문제점을 알면서도 덮었고, MBC 'PD수첩'팀은 이를 폭로했다. 잘못이 드러난 이상 없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위기를 생산적 기회로 활용해야 했다.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수십조 내지 수백조원의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말에 환호하던 국민은 이 논란 덕분에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첨단과학과 생명윤리에 대해 몇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예외 없이 토론이 벌어졌다. 언론의 진실 보도와 국익이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얘기했다. 학문의 정직성과 인간 복제 문제, 인류의 미래 문제까지 대화가 확장됐다. 과학과 윤리, 언론과 종교, 과학철학이 동원됐다.

얼마나 소중한 기회였던가.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게 소위 이 땅의 보수.진보주의자들이다. 얼치기 진보주의자들은 '알 권리'니 '진실 추구'니 하면서 반황우석 편에 섰다. 어쭙잖은 보수주의자들은 '국익'을 앞세워 친황우석 편에 섰다. 낙태와 생명윤리 문제가 좌파의 관심사라는 주장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부시 미 대통령과 로마 가톨릭은 좌파가 아니다. 보수 언론이 황 교수를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건 얼마나 허황한 얘긴가. 황 교수는 이미 세계적 과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 편'인 MBC가 몰매를 맞게 내버려두면 진보진영의 세력 약화를 초래한다는 패싸움씩 논리, '보기 싫은 짓만 골라 하던' MBC가 이번에 딱 걸렸다는 비뚤어진 심사가 내면에 숨어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이런 자들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황 교수는 과학자다. '사뿐히 즈려 밟고' 연구실로 복귀하기를 기원하는 진달래꽃이 깔려 있고 눈물을 흘리는 여성의 모습이 언론에 등장한다. 그 뜻은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다만 그런 표현은 이번으로 끝냈으면 한다. 황 교수를 스타로, 핍박받는 선지자로 만들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과학자에게 대중의 열광적 인기는 독약이 될 수 있다. 황 교수팀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생명윤리와 홍보, 국제특허 전문가들을 지원하는 게 현재의 절실한 과제다.

이번 논란이 우리 사회에 던진 거대담론도 찬찬히 풀어나가 보자. 허섭스레기 얼치기 진보.보수주의자들이 머쓱해지도록 말이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