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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흔적 문화공간으로 … 군산 옛 도심의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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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군산시가 옛 도심에 남아 있는 일제시대 건축물을 활용한 도심재생 사업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사진 군산시]

몇년 전만 해도 동네 주택 중 절반가량이 비어 있었다. 거리는 낮에도 사람이 별로 없어 썰렁했다. 밤이면 불 꺼진 곳이 많아 어두컴컴하고 을씨년스러워 우범지대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관광객들이 줄지어 밀려들고 있다. 사람과 차가 뒤엉켜 도로가 혼잡스러울 정도다. 다음 달부터는 아예 차량 통행을 제한할 방침이다.

 도심재생 성공 모델로 떠오른 전북 군산시 장미동과 월명동 얘기다. 이 지역은 ‘근대문화도시 조성 사업’을 통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되면서 평일 700~800명, 주말엔 하루 3000~5000명씩 방문객이 몰린다. 올 한 해에만 70만~100만 명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곳은 내항 인근인데다 시청과 법원·경찰서 등 관공서가 집결해 오랫동안 군산시의 중심부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나운동·미륭동·조촌동이 개발되면서 급격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주민들은 신시가지 아파트로 대거 빠져 나가고 관청들도 줄줄이 이삿짐을 쌌다.

건립 3년 반 만에 100만 명이 방문한 근대역사박물관과 옛 조선은행(위 사진)·군산세관(아래 사진). [사진 군산시]

 슬럼화 돼가던 옛 도심의 부활은 일제 강점기 수탈의 현장이라는 아픈 역사를 잘 활용한 덕분이다. 군산 지역에는 일제시대 지어진 건축물 170여 점이 남아 있다. 지자체는 이들 시설을 과감하게 매입해 교육과 문화·체험이 결합된 관광상품으로 솜씨있게 버무려냈다. 그 중심에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 있다. 182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4층에 연면적 4200㎡ 규모로 건립한 박물관은 1930년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양조장·영화관·신발가게·미곡상회·인력거 등 거리 모습을 꾸몄다. 2011년 9월 개관해 지난 2월 누적 관람객 1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중 90%는 군산시민이 아닌 외지 방문객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서 전국 공립박물관 203곳 중 5대 우수 박물관에 꼽힐 정도로 호평을 받는다.

 박물관 주변의 근대 건축물을 역사벨트로 묶는 작업에도 공을 들였다. 1922년 지은 옛 조선은행 건물은 근대건축관으로, 농민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던 일본 제18은행은 근대미술관으로 꾸몄다. 수탈한 쌀을 저장하던 양곡 창고는 공연장과 갤러리로 재단장했다. 일제시대 무역회사 건물은 카페로 탈바꿈하고 다다미방을 갖춘 일본식 가옥은 숙박체험시설로 개조했다.

 박물관 주변 750m 구간에는 시간여행 거리도 조성했다. 상가·식당 건물 외벽에 시멘트나 벽돌 대신 목재를 사용해 1930~4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도록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군산시 근대문화도시 사업은 국토교통부 경관 평가와 유엔-해비타트의 ‘아시아 도시경관’ 평가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말에는 도시재생 선도 사업으로 지정돼 100억원의 인센티브도 받았다.

 문동신 군산시장은 “잘 조성된 인프라에 볼거리·즐길거리 등 다양한 콘텐트를 채워넣는 작업에 힘을 쏟겠다”며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를 함께 조망할 수 있도록 새만금과 연계한 관광코스를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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