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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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 방학 때 국민학교 4년 생 맏아들을 고양군에 사시는 오라버니께 3박4일 예정으로 보내게 되었다. 아들은 바둑을 배우러 가겠다고 하였고, 오라버니께서는 아이들이 고생을 해봐야 부모의 공을 알게된다는 지론으로 며칠 보내라고 해서 외삼촌과 조카가 합숙하는 수련장이 마련된 것이다.
친정이라야 40대 중반을 넘은 오라버니 한 분뿐인데 벌써 20년 가까이 무슨 연구를 한답시고 가난 속에서 독신으로 지내고 계신다. 수련이 끝나는 날 국민학교 2년생 딸을 데리고 시내에서 아들을 맞으니 신나게 떠들어댄다. 바둑을 배운 이야기, 여러 도구를 사용해서 아크릴로 여러 모양을 만드는 법도 배웠다 하고, 올 때는 외삼촌이 시험용으로 만든 물건을 기념품으로 받았다면서 다음에 또 가겠다는 것이다.
처음 집을 떠나 보리밥에 되는대로의 반찬을 먹고 집에서는 하지않던 이부자리 개기와 청소를 하고 방 치울때나 상 차릴 때 거들어야하는 등 군대식 생활 속에서도 무엇을 배우는 즐거움이 시련을 이겨낸 것일까.
그런데 녀석이 다음에 한다는 말이『엄마, 나도 이다음에 발명가가 되겠지만, 나는 결혼도 하고 그리고 발명도 많이 할거야. 외삼촌은 이때까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잖아.』하는 것이 아닌가. 수련의 효과가 너무 컸음일까. 오라버니께서는 『발명이란 작은 것을 여러개 할 수도 있겠지만 큰 것을 하나 할수도 있는 거란다.』하시면서 씁쓸히 웃으신다. 계속하는 연구는 언제 끝나는지, 아니면 그 지독한 고집을 언제 굽힐 것인지, 그리하여 올케는 언제 맞이하게 될 것인지 아이들의 시선을 피하여 차창 밖을 내다보며 기쁨 속의 슬픔이라는 말도 떠올려 보았다. <김정복 경기도 남양주군 미금읍 도농 3리 265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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