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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기자의 교육카페] 성적 중압감에 힘겨운 아이들 … 부모 기대 조금 덜어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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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성탁 기자
교육팀장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는 마포대교 북단에 있습니다. 지난 1일 오후 11시쯤 이 지구대엔 “다리 난간에 기대 우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지구대 순찰팀장인 장재근(57) 경감이 출동했더니 체격이 좋은 고3 남학생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강남지역 고교에 다니는 이 학생은 진로에 대해 아버지와 의견 갈등을 겪다 세상을 등지려 했다고 합니다. “전 체육학과에 가고 싶은데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고3인데 지금부터라도 수학을 공부하라고 하세요. 전 수학 공부가 너무 어려운데….” 장 경감은 학생을 안정시킨 뒤 “아버지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다. 하지만 진로에 대한 생각이 너무 다르니 너를 알고 부모님도 아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 봐라. 선생님이 말해 주면 아버지의 마음도 바뀔지 모른다”고 조언했습니다. 며칠 뒤 학생은 ‘선생님과 면담하기로 했다’며 고맙다는 문자를 장 경감에게 보내왔습니다.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학과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자녀가 목숨을 끊으려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겁니다. 이 학생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를 데려가려고 지구대에 온 아버지는 예체능계 학과에 가려면 소질이 뛰어나야 할 텐데 아이가 그런 것 같지 않아 다른 진로를 찾아주려고 했을 뿐이라며 매우 당혹했답니다. 장 경감은 “요즘 아이들은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가 많고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자라서 작은 갈등에도 쉽게 충격을 받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다음날인 2일 오전 9시쯤 자전거로 마포대교를 건너 퇴근하던 장 경감은 가방을 메고 다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여학생을 발견합니다. 등교 시간이 지난 터라 이상해 다가갔더니 학생은 숨죽여 울고 있었습니다. 경찰 신분증을 보여 주며 위험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구해 주고 있다고 설명한 뒤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말문을 연 학생은 “엄마·아빠가 기대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 실망시켜 드렸다. 공부를 해도 성적이 안 오르고 고3 학기 초 점수가 수능까지 그대로 간다고 해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성격이 차분하고 공부도 어느 정도 하는 이 학생에게 학업의 중압감이 매우 컸던 겁니다. 시험이야 다시 볼 수 있지만 생명은 되돌릴 수 없다는 장 경감의 말에 학생은 펑펑 울음을 쏟았습니다.

 절대 있지 말아야 할 장소에서 아이들을 만나 온 장 경감은 부모들이 학생들의 마음을 너무 모른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는 “공부를 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아이들 스스로 큰 실망감을 느낀다는 걸 부모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합니다. 남의 자식과 비교하거나 돈도 대주고 정성도 쏟는데 왜 성적이 오르지 않느냐고 쏘아붙이는 부모의 말이 상처가 됐다는 아이들이 많답니다. 장 경감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학업 스트레스가 더 큰 것 같더라. 다그치지 말고 아이를 관찰하면서 따뜻한 말을 건네주라”고 조언합니다. 세월호 참사 후 1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부모들이 했던 생각, 다시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공부 못해도 좋으니 내 곁에만 있어다오”라던 바람 말입니다.

 김성탁 교육팀장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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