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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1%금리 시대의 재택구 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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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논설위원

재테크 전도사, 재택구입니다. 세월호 1주기. 오늘 같은 날은 마음도, 말도 무겁습니다. 주제도 좀 무겁습니다. ‘투기 말고 투자하라’입니다. 방법은 ‘분산투자의 왕, 적립식 펀드’입니다.

 투기가 뭡니까. 요즘 나라를 뒤흔든 성완종 전 회장의 경남기업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경남기업은 어제 상장 폐지됐습니다. 회사가 망해 더 이상 주식을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없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건설업계 최초로 증시에 입성한 지 42년 만입니다. 외환위기 땐 대우그룹 분식회계에 휘말렸고 성 회장 인수 후엔 건설·자원외교 비리에 휘말려 자기 자본을 모두 까먹고 결국 불명예 퇴진한 겁니다. 우리 기업, 우리 증시의 짙은 어둠을 보는 듯해 씁쓸합니다.

 더 씁쓸한 일은 그런 경남기업을 놓고 투기판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경남기업은 상장폐지 전 일주일간 정리매매를 했습니다. 첫날인 6일 88.4%가 급락하더니 이틀 뒤 8일엔 94.9% 급등했습니다. 그 다음날엔 다시 반 토막이 났지요. 결국 4155원에서 시작한 주가는 113원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1억원을 투자했다면 하루 만에 1억원을 벌었다가 그 다음날 1억원을 다시 날렸을 수 있습니다.

투자와 투기는 종잇장 하나 차이입니다. 보통은 위험을 감당할 만하면 투자, 감당 못할 정도면 투기라고 봅니다. 하지만 대개는 ‘내가 벌면 투자, 남이 벌면 투기’라고 하더군요.

 본래 주식 시장은 투기꾼의 무대였습니다. 이걸 투자자의 무대로 바꿔놓은 사람이 경제학자 해리 마코위츠입니다. 그는 주식 포트폴리오를 수학으로 증명했습니다. ‘분산 투자야말로 장기적 안전성을 확보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외쳤지요. 그의 포트폴리오가 투자자에게 주는 의미는 공산당 선언이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주는 그것과 같았습니다. ‘일어서라, 그리고 분산투자하라’ 교과서이자 선동서였지요. 연기금의 주식 투자가 가능해졌고 중산층에 엄청난 부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마코위츠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지도 교수였던 밀튼 프리드먼의 표현을 빌리면 “수학도, 경제학도 아니며 경영학은 더더욱 아닌” 포트폴리오로 말입니다.

 적립식 펀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종목만 분산하는 게 아니라 시간도 분산합니다. 어제 오늘 내일을 같이 사는 거죠. 적립식 펀드야말로 위험을 분산하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투기 말고 투자엔 최고의 수단입니다. 한물 간 것 아니냐고요? 물론 적립식 펀드, 요 몇 년 고생했지요. 수익률도 별로였습니다. 중국 증시의 몰락이 컸습니다. 한국 증시는 더 가라앉았지요. 게다가 펀드매니저 한 명이 많게는 십여 개씩 펀드를 굴렸으니 좋은 성과를 낼 턱이 없었지요. 하지만 그래도 적립식이 낫습니다. 2000년대 중반 고점에서 펀드에 뭉칫돈을 넣은 거치식 펀드 투자자 중엔 아직도 마이너스 수익률인 분, 꽤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적립식 펀드 대부분은 플러스 수익입니다.

 정책 당국도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요즘 같은 1% 저금리 시대, 세금은 곧바로 투자의 길라잡이가 됩니다. 서민이 자산 모으고 노후 대비하는 쪽에 혜택을 몰아줘야 합니다. 퇴직연금, 개인 연금처럼 10년 이상 장기 적립식 펀드에 세제 혜택이 많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입니다. 주식은 거래세만 내는데 펀드는 배당세까지 물립니다. 이러니 당국이 세금 걷기에만 급급해 투자 대신 투기를 부추긴다는 얘기가 나올 밖에요.

 오늘의 뱀 다리(蛇足) 하나. 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3년여 만에 2100을 넘자마자 종합지수 3000시대 운운, 투자 설명회가 봇물입니다. 코스닥의 개인투자자 비중은 90%를 넘나듭니다. 과열 조짐입니다. 물론 최근 몇 년 미국·일본 주가 오른 것에 비교하면 아직 멀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만 보면 오름세가 제법 가파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습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습니다. 투자 대신 투기 하시는 분들. 이완구 총리 말마따나 ‘4월은 잔인한 달’이 될 수 있습니다. 안전벨트 단단히 매시기 바랍니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