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선생님 싫다고 전학 보내달라는 아이 어쩌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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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01 교사에게 먼저 마음을 터놓아 보세요

Q (아침마다 전쟁 치르는 직장맘) 딸 둘 가진 직장맘입니다. 초등 2학년 큰딸이 책을 펴지 않아 귀를 선생님께 꼬집힌 이후 학교에 가는 걸 꺼려하네요. 반 친구들이 시끄러워 국어책 펴라는 얘기를 못 들었다고 합니다. 귀를 꼬집어 잡아당길 만큼 잘못한 건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이한테는 “속상해서 어떻게”라고 말 하면서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주의하자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아이가 울먹이며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이 알림장에 글씨를 못 쓴다며, 이마에 도장을 찍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더군요. 당장에 선생님께 달려가 따지고 싶었지만 며칠 뒤 학교에 가야 할 일이 있어 꾹꾹 참았습니다. 선생님을 만나 꼬집은 이야기는 빼고 도장 이야기를 웃으며서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괜찮다고 조금 지나면 남자아이들 같은 경우엔 코나 볼에도 찍어달라고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애는 여자아이인 데다 그런 부분에 굉장히 민감해하며 잘 잊지를 못한다고 했더니, 되레 괜찮다고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하실 건지 여쭤 봤더니 당당하게 계속할 거라고 합니다. 아이가 반에서 왕따 당하지 않을까 싶어 큰소리도 못 쳤습니다. 아이는 계속 반을 바꿔달라거나 전학을 보내달라고 하고 아침에 학교 가기 싫다고 안 가면 안 되냐고 하니 힘이 드네요

A (의사이자 교육자인 윤 교수) 자녀가 학교를 가기 싫어한다는 것은 어느 부모에게나 매우 큰일입니다. 특히 하루 이틀 그러다 마는 것이 아니고 계속 가기 싫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말이죠. 그리고 실제로 학교 가는 것을 거부하는 행동까지 보이면 다각적으로 원인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환경이 좋지 않아도 그런 생각이 들 수 있고 아이가 너무 섬세해 작은 것에 상처를 받아 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보통은 두 요소가 상호 작용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단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고 아이의 마음을 잘 들여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긍정적인 면도 함께 보는 것이 좋은데요, 친한 친구는 사귀었는지, 재미있는 과목은 있는지, 선생님께 칭찬 들은 것은 없는지를 물어보세요. 부정적인 부분을 없앤다고 해서 긍정적인 것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긍정적인 것을 강화해 부정적인 요소를 없애는 게 더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과는 믿음을 갖고 파트너 관계를 맺도록 하세요. 자녀의 이야기를 상세히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섬세한 학생에겐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게 당연하니까요.

 친구들과 잘 놀고, 싫다 해도 학교에 열심히 나간다면 아이가 성장하며 잘 극복하리라 예상됩니다. 그러나 그런 일 없겠지만 혹시나 아이가 고립돼 있고 실제로 학교 가기를 거부한다면 혼자 고민 마시고 소아청소년 마음 전문의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02 엄마가 불안하면, 아이도 불안해요

Q 학교 가기 싫다고 하지만 실제 안 가는 일은 없습니다. 친구가 많지는 않아도 친한 친구 몇 명은 있고요. 긍정적으로 보려 하니 이전보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말도 좀 줄어든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애가 아니라 제가 너무 예민한 것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에 선생님한테 야단 많이 받았지만 그것이 지금 특별히 상처로 남아 있지는 않거든요. 그냥 재미있는 추억으로 느껴지기까지 하고요. 어떻하면 자녀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조절할 수 있을까요.

A 엄마가 자녀에게 집착하는 것은 본능 중의 본능, 모성애 때문이죠. 자녀를 남이 아닌 나로 느끼게 하는 모성애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현재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목숨처럼 아이를 소중하게 바라보게 하는 엄마의 마음이 있어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모성애는 자녀의 생존을 지켜주려는 마음이기에 모성애가 작동하면 불안 신호가 켜지게 됩니다. 불안은 불편한 느낌이긴 하지만 우리 생존에 가장 중요한 신호이기도 합니다. 불안해야 우리 뇌 안에 위기 관기 시스템이 작동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위험에 대비하게 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되게 되면 불안 신호가 더 예민하게 작동합니다. 아이에게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지 엄마의 뇌가 세심하게 지켜보게 하는 것이죠.

 그런데 불안 신호가 지나치게 커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현재보다 미래와 과거에 치우치기 쉽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건 현재인데, 현재가 줄어들게 되며 행복 에너지를 빨아들일 공간이 작아져 마음이 더 불안해지고 지치기 쉽습니다. 자신의 생각 중 30%만 과거와 미래에 머물러 있게 돼도 행복감을 뇌가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도 하는데요. 아마도 하루 종일 머리에서 떠돌아 다니는 생각을 적어 본다면 70~90%는 과거와 미래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딸 두 명도 키워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 하고 뇌가 지칠 수밖에 없겠죠. 뇌가 휴식을 취할 때는 전투 상태에서 충전 상태로 전환이 잘되어야 하는데 지친 뇌 일수록 생존에 대해 예민해져 불안 신호가 더 오르고 그래서 가만히 쉴 때도 뇌가 전투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친 뇌가 계속 전투 상태를 유지하게 되면 뇌를 더 지치게 하고 지친 뇌는 현재의 긍정적인 면보단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염려에 더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아름다운 엄마의 마음이지만 아이러니하게 나를 너무 희생해선 아이에게 꼭 필요한 따뜻한 에너지를 전해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너무 지쳐 있고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으니 아이에게 줄 에너지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때론 나만의 충전 시간을 갖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엄마가 불안하면 아무리 말을 평화스럽게 해도 그 느낌이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되고 아이도 뇌가 전투 상태로 켜지게 됩니다. 반대로 엄마의 뇌에 따뜻한 에너지가 가득하면 아이의 눈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불안 신호를 줄여 줄 수 있습니다.

 지친 뇌 충전법에 영어로 ‘disconnect to connect’ 즉 연결을 위한 단절 훈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단절은 뇌가 일할 때 켜지는 신경망과 잠시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연결은 휴식 상태에서 켜지는 뇌의 신경망과 접속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삶의 가치이나 여기에 휴식이란 활동을 등한시하게 되면 뇌가 일 중독에 빠지기 쉽습니다. 일 중독은 일하는 신경망과 잠시 접속을 끊으려고 할 때 금단 증상이 나타나 버리는 것입니다. 휴식을 취하려하면 불안감이 생기는데 불안은 뇌를 일하게 할 때 만들어지는 신호입니다.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일 중독의 배경에는 휴식을 부정적으로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심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닌데요 전 너무 쉬고 싶은데요’라는 생각이 들어도 의식하지 못하는 내면에선 불안심리가 계속 나를 다그칠 수 있습니다, ‘어딜 쉬어, 더 달려’ 하고요. 일과 휴식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휴식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잘 쉬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삶의 의욕과 창조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으니깐요. 또 긍정의 에너지를 내 아이에게 전해 줄 수도 있고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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